뻔한듯해도 가끔은 화려하고 부티나는 삶을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회사원이라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일탈을 행하고 싶다.
영화 속 주인공 '애쉬톤 커쳐'는 바로 그런 삶을 일상으로 살고 있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축복받은 몸과 얼굴을 중심으로 여자들을 봉으로 삼아
잘 살고 있는 그는, 도대체 무슨 인생을 살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화려한 삶과 남들이 꿈꾸는 파티홀릭의 삶은, 우리에게도 잠깐은 혹할만한 삶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처럼 계속되고 별 의미와 목적이 없을 경우에는 말 그대로
그러한 삶도 무료해진다. 더군다나, 나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고 남을 등쳐먹어 공짜로 얻은 삶일 경우에는 더더욱.
영화 'S러버'는 원제 'Spread'의 S가 아닌 사실상 'SEX'에 S에 가깝다.
우리나라 부제는 '애인보다 짜릿한' S러버이기 때문에 더더욱 애인외에 섹스러버(섹스파트너)를
지칭하는 듯. 영화 속 내용도 그렇기도 하고.
암튼 애쉬톤 커쳐가 그 'S러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
그의 축복받은 기럭지와 몸매, 얼굴 등을 내세워 영화 속 숱 여자들을 농락하고 기쁘게 할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중들에게도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남자인 본인이 봐도 그의 기럭지는 정말 놀랍다.
그러나, 이렇게 '섹스토이' 혹은 '기둥서방'으로 사는 인생도 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돌아가면서 물주를 잘 잡으면 계속이나 살겠지만, 영화 속 대사처럼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시기도
한 때 '젊을 때'뿐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고 능력을 키우는지는 그로 인해 잘 알 수 있다.
결국은 잘 나가는 제비도, 자신의 무능력함과 현실을 깨닫게 됐을 때 '소시민'이 된다.
그러나 그 '소시민'은 배달부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능력으로 자립해 살아갔을 때
진정한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물론 솔직한 사랑감정도 마찬가지고.
영화는 현실에서도 '데미무어'의 섹스토이라고 놀려대는 애쉬톤 커쳐의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하여,
아주 영리하게 영화를 통해 현실의 타블로이드 잡지들에게 펀치를 날리는 것 같다.
"니들은 나 애쉬톤 커쳐가 이렇게 속만 빈 줄 알지? 그러나, 이 영화 제작두 내가 했다구.
영화를 보면 화려한 섹스와 삶만 보여주는 것 같애? 결국은 외롭지만 현실은 이렇다는건 내가 더 잘 안다구~" 하면서 영화 내외적으로 그의 이중적 매력을 더욱 드러내보였다.
역시 영리한 악동이다.ㅋㅋ
섹스장면은 많이 나오지만, 생각보다는 볼만한 정도였고,
의외로 씁쓸한 인생맛을 보여주는 섹스로맨틱드라마였다.
이 영화의 매력이자 장점은 역시 '애쉬톤 커쳐'였다.
오죽했으면 여자커플, 여자친구들끼리 보러 온 사람들이 더 많았을까?
그의 매력과 바디는 충분히 눈요깃할 수 있는 영화다. 많이들 즐기시라~ 알아서 벗어주니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