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홍보 과정에서 흔히 제작자나 감독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그들의 유명세를 활용하려는 목적도 크겠지만 한편으론 그 영화가 가지는 성격을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관객들이 감독이나 제작자의 이름을 들음으로써 그 영화가 가지는 이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흔히 '마이클 베이가 감독했다'고 하면 다른 건 몰라도 볼거리 하나는 확실하겠구나 하고 '박찬욱 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면 이 영화 적잖이 살벌하겠군 하고 예상하듯이 말이다. 그만한 개성을 지닌 감독이나 제작자는 꽤 많이 존재하는데, 헐리웃 감독 중에는 대표적으로 팀 버튼을 꼽을 만하다. 그의 이름 자체가 헐리웃 영화의 한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만의 음침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유머와 인간미가 공존하는 그의 작품들은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의 이러한 캐릭터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여러번 발휘됐었는데, <나인(9)>(이하 <9>)은 그가 다른 감독과 만났음이 알려지면서 보다 독특한 인상을 풍겼다. <원티드>로 2008년에 헐리웃 액션영화계를 한번 들었다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과의 만남은 꽤 이채로웠다. 팀 버튼의 환상동화적 분위기와 베크맘베토프의 작렬하는 스타일리쉬 액션이 만나면 어떤 폭발력을 지닐까 하는 기대를 주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서 탄생한 <9>은 생각보다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결과물이다. 그만큼 폭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개성이 뚜렷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미래 시점, 인간과 기계가 벌이는 전쟁에서 인간이 패하고 전멸한 상황. 세상에 생명체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 가운데 홀로 태어난 헝겊 인형 9(일라이저 우드)는 자신을 만든 주인이 죽어 있음을 알고 홀로 바깥 세상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그러던 중 또 다른 헝겊 인형 2(마틴 랜도)를 만나고, 9는 자신과 같은 헝겊 인형이 자신뿐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당도한 헝겊 인형들의 사회에는 자만심이 강한 리더 1(크리스토퍼 플러머), 엉뚱한 쌍둥이 학자 3과 4, 마음씨 착한 기술자 5(존 C. 라일리),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듯한 예술가 6(크리스핀 글로버), 바람처럼 날렵한 여전사 7(제니퍼 코넬리), 힘으로 승부하는 행동대장 8(프레드 타타시오르)가 살고 있다. 9 자신이 가장 나중에 태어난 것이다. 아직 바깥세상을 쥐고 있는 괴물 기계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들은 전략을 짜 나가지만 서로 다른 성격들이 엇나가며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 와중에 9의 실수로 본연의 위력을 뽐낼 수 있게 된 기계들은 헝겊 인형들의 영혼을 빨아들여 자신의 힘을 더욱 키우려 한다. 이제 이 전쟁은 당장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
이 영화의 외적인 측면들은 사실 상당히 개성이 뚜렷하다. 제작자의 면면도 그렇고, 9개의 이름없는 헝겊 인형이 주인공인 SF액션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그리고 드물게 헐리웃 애니메이션치고는 전체 관람가가 아니라는 점 등이 그렇다.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도 일라이저 우드, 존 C. 라일리, 제니퍼 코넬리 등 연기파로 알려진 배우들로 이 영화가 결코 방학 시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법한 팝콘 무비는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는 일정 부분 알맞게 보여진다. 이 영화는 쉐인 액커 감독이 만든 동명의 단편에 팀 버튼이 반한 나머지 만들어진 장편인데, 그에 걸맞게 영화 속에는 딱 팀 버튼 취향이라 할 만한 흔적들이 꽤 보인다. 암울하지만 몽환적인 배경, 헝겊 인형의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생김새, 과장되지 않은 목소리 연기나 캐릭터의 표정 연기 등이 그러하다. 또한 영화가 선보이는 의외로 스피디하고 꽤 스타일 있는 액션들은 함께 제작을 맡은 베크맘베토프의 솜씨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제작자들의 성격이 서로 상당히 다르고, 소재 또한 미래를 배경으로 헝겊 인형들이 펼치는 액션 어드벤처라는 생소한 형식을 띠고 있어서 뭔가 독특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이 등장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한 듯 하다. 우선 영화는 본연의 뚜렷한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짧은 러닝타임을 갖고 있다. 원작이 단편이었다고 해도 장편화하는 과정에서 보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배경을 추가할 수도 있을텐데, 원작 단편을 보진 못했지만 이 장편만 놓고 봤을 때에는 더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은 배경과 캐릭터를 놓고 너무 좁은 시선으로만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중간에 세상이 이렇게 초토화가 된 이유가 얼핏 언급되긴 하지만,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대립 구도가 괴물 기계 몇 개와 인형 군단(?)으로 좁혀지면서 이것이 그들이 이야기하는대로 '인류가 사라진 세상의 희망'을 위한 것인지 쉽게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이 대립에 충분한 무게를 싣기 위해서는 배경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좀 더 대담하고 선이 굵었어야 했고, 시간의 여유도 더 있어야 했다. 또한 헝겊 인형 캐릭터들을 그들의 이름인 숫자와 연결지어서 이야기의 급전환이나 더 다양한 사연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한 접근이 부족해 그들의 숫자 이름들은 그저 그들의 서열과 나이를 상징하는 것일 뿐인가 하는 인상도 주었다.
또한 앞서 얘기한 여러 가지 매력의 가능성이 한 영화 안에 합쳐지면서 오히려 매력이 더 모호해진 듯한 인상도 준다. 12세 관람가라고 해서 어린이용이 아닌 제대로 된 성인 타겟용 애니메이션을 예상했으나, 성인 관객층을 충분히 흡수할 만한 강력한 스토리라인이나 비주얼, 주제의식은 오히려 부족해 보였다. 일부 액션 장면은 상당히 화려하고 힘있게 묘사되지만, '전체 관람가'라도 상관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암울한 미래와 독특한 캐릭터들은 영화를 꽤 진중하고 여운이 남는 주제의식으로 끌어들일 것 같았으나, 다소 성급하고 타협적인 결말은 이러한 확고한 주제의식이 부족함을 느끼게 했다. 또한 앞서 얘기한 세계관과 이야기에 대한 꼼꼼한 설명의 부족은 개성 있는 외형에 강렬한 카리스마를 충분히 심어주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붕 뜨게 하는 듯 했다. 아이가 보기에는 다소 어둡고 폭력적인데, 그렇다고 어른이 보기에도 확실한 쾌감을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강렬한 매력을 윟서 영화는 어린이용 영화든 성인용 영화든, 정통 SF물이든 액션물이든 정체성을 확실히 했어야 했다.
물론 영화 곳곳에는 이 영화만이 보여준 인상적인 매력들도 분명 존재한다. 헝겊 인형 캐릭터들의 존재감은 특히 두드러진다. 아날로그적인 몸을 하고 있지만 마치 인공지능 로봇 같은 행동을 보여주는 그들은 안경 너머로 동그랗게 빛나는 눈빛에서부터 몽롱하면서도 매우 사려깊을 것 같은 인간미를 풍긴다. 차가운 분위기의 헝겊 인형에게서 이러한 인간미를 끄집어냈다는 것은 팀 버튼적 상상력이 잘 발현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후반부에 헝겊 인형들이 폐허가 된 바깥에서 오래된 축음기에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틀어놓고 함께 춤추는 장면은 우울하고 척박한 미래 속에서 그들이 찾고자 하는 마지막 휴머니즘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꽤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오랜 고초를 겪은 뒤 마침내 찾은 듯한 평온의 공간에서 그들이 춤을 추고 장난을 치는 이 순간은 여러 단면을 지닌 이 영화가 서정성 또한 상당부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가 얼핏얼핏 보여주는 여러 가지 단면들은 보다 세밀한 이야기와 캐릭터 관계, 보다 여유로운 러닝타임이 존재했다면 이 영화를 '단편을 늘린 것이 티가 나는' 장편이 아니라 정말 무시못할 규모의 서사시적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가 노렸던 묵시록적 SF, 낭만적 동화, 뭉클한 휴먼드라마 모두를 획득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영화 말이다. 그러나 더 많은 걸 보여주기엔 이 영화는 시간이 없었고, 적잖이 불친절했다. 넓은 배경을 갖다놓고 정작 이를 조명한 카메라 렌즈의 넓이는 아쉽게도 너무 좁았던 탓이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장점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9>은 많은 것들을 모두 보여줄 수 있었으나 결국 어느 하나 확실하게 보여주진 못한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