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도 않았고 뚱뚱하지도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았어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전 때리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죠.
널때리는 이유는 왜 때리냐고 물었기 때문에 때리는 거야라고 하더군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뭐가 다른가.
가만히 서있어도 죽고 뛰어 도망쳐도 죽는다.
열심히 일해도 죽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죽는다.
어리면 어리다고 죽고 늙으면 늙었다고 죽는다.
살려고 해도 죽고 죽으려고 해도 죽는다.
숨어도 죽고 안숨어도 죽는다.
웃어도 죽고 울어도 죽는다.
"소장님은 보면 볼 수록 저희가 따라야 하는 정해진 규율이 없는 사람이에요.
안전하기 위해서 따를수 있는 법이 없어요."
어차피 다 죽는다. 누가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며칠전에 베스키가 얘기해줬는데 누가 조에서 이탈해서 철조망 밖으로 탈출했대요.
괴트가 탈주범이 있던 막사의 조원을 세워놓고 베스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을 쏴 죽였답니다.
줄 사이를 누비며 한명씩 건너서 총으로 쏴 죽였대요. 스물 다섯명을 죽였죠."
무작위로 쏴죽이는 가운데 죽는 사람은 뭐고 사는 사람은 뭘까.
누구는 게토로 들어가면서부터 죽고 누구는 몸이 말을 안들을 때까지 뼈빠지게 일하고 가스실 들어갈때까지 살다가 죽는다.
독일장교가 잠시 마음을 바꿔 죽이지 않은 사람, 갑자기 기분이 나빠서 죽인 사람, 죽이려고 했는데 총이 갑자기 망가져서 산사람, 옆사람 죽이다가 실수로 죽인 사람. 뭘 어쨋길레 죽고 사는 것일까.
누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죽어 소각되고 누구는 가스실까지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온다.
쉰들러의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사람과 안오른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똑같은 유태인인데. 똑같은 사람인데.
"더 살릴 수 있었는지 몰라."
사람이 죽고사는걸 과연 인간이 결정짓는 문제인가.
어떤 힘이 천백명의 사람들과 쉰들러를 만나게하고, 어떤 힘이 쉰들러가 그런 위험한 짓을 하도록 하고 모든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며, 그 어떤힘이 쉰들러가 파산할 때 쯤 전쟁이 끝을 맺게 하는가.
쉰들러가 영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그도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히틀러는 왜 6백만이 넘게 죽였고 자기는 왜 천백명이나 살려냈는지.
똑같은 독일인인데. 똑같은 인간인데.
감독은 이런 삶의 오묘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간의 의지 또한 다른 쪽 손으로 잡고 있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것은 누구도 비웃을 수 없는 절박함이다. 삶의 오묘함이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인생의 큰 그림이라면, 살고자 하는 의지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인생의 거친 표면이다. 감독은 동정의 눈길로 그 거친 표면을 어루만진다.
쉰들러는 열차에 짐승처럼 실린 유태인들을 위해 소방호스로 물을 뿌린다. 독일장교들은 그런 쉰들러의 행동을 잔인하다고 조롱하고 비웃는다. 희망을 주는 것은 잔인한 것이라며 말이다. 그렇다. 쉰들러가 그들에게 물을 준 것은 곧 희망을 준 것이다. 유태인들에겐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들은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쉰들러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었다.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영화는 초를 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초가 위태롭게 꺼져가려 할 때쯤 타이틀 로고가 뜬다. ‘쉰들러의 리스트’. 마치 그것이 마지막 희망을 대신하는 단어인 것처럼. 그리고 쉰들러의 리스트는 영화의 말미에 다시 안식일을 기념하는 촛불을 켜게 해준다. 처음 장면처럼 그 불빛은 모두를 총천연색으로 물들이진 못하지만 우리는 불꽃 그 자신이 색을 입고 살아있는 것을 보면서 곧 세상을 덮고 있는 이 잿빛의 광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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