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향해 가는 징검다리.... ★★★☆
이미 연재가 끝난 소설의 영화를 매번 기다리는 것도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자꾸 개봉이 늦어지는 것도 불안해지는 요소고(비록 3인방이 마지막 영화까지 출연한다는 계약을 했다고는 해도), 마지막 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아예 두 편으로 나눠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개봉한다는 것도 너무 상업적인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해리 포터> 영화 시리즈를 대함에 있어 원작 소설을 너무 재밌게 봐왔던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마저 든다.
아는 지인으로부터 여섯 권의 알록달록한 해리 포터 1, 2, 3부 각 두 권씩을 선물 받은 게 아마 2000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 책인 줄 알고 거들떠도 안 보다가 화장실용으로 읽기 위해 가지고 들어간 게 작년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출간될 때까지 매년 해리 포터의 새로운 시리즈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신세가 되는 계기가 될 줄은 당시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시리즈의 첫 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영화로 나온 게 2001년이니 그 어린 꼬마들을 봐왔던 시간만 벌써 8년이 흘렀고, 이제 <해리 포터> 영화를 보면 명절이나 되어야 한 번씩 보는 먼 곳에 사는 조카들 만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암튼, <해리 포터> 시리즈는 원작 자체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방대해지고, 복잡해지며, 사실 아이들용이라기엔 꽤나 어둡다. 영화도 마찬가지어서 거의 매번 누군가는 죽으며, 복수, 배신, 대립 등이 격렬히 진행된다.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이전의 시리즈에선 주로는 한 부분에만 집중해도 무리가 없었지만, 신작은 몇 가지의 줄기가 동시에, 그것도 비슷한 정도의 비중을 가진 채 진행된다. 원작 소설의 영화화를 위해 많은 부분을 쳐 냈다고는 해도 시간도 무려 2시간 30분이 넘어가며, 원작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꽤나 지루하게 느껴질 여지가 분명히 있다.
특히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는 이전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작품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까지 거의 한 편처럼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부활한 볼드모트가 마법부에 나타나 덤블도어와 대결을 펼침으로서 그 동안 볼드모트의 부활을 부정해 왔던 마법부조차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예언자의 예언에 의해 볼드모트와 해리 포터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관계, 즉 해리가 선택받은 자라는 게 확인되었다.
역사상 최악의, 그리고 최강의 어둠의 마법사가 부활을 했다는 건, 오히려 기존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즉, 숨어서, 자신의 존재를 감춰왔던 죽음을 먹는 자들이 노골적이고 공개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많은 마법사들이 겁에 질려 차라리 침묵을 택하게 된다. 영화는 머글 세계에 일어나는 각종 재난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머글들은 이 재난이 우연히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둠의 마법사들에 의한 것이다. 소설에선 마법부가 신임 영국 수상에게 경고하는 장면이 초반을 장식하지만 영화에선 삭제되었다.
영화의 제목인 <혼혈 왕자>는 마법약 수업에 약했던 해리가 새로운 교수인 슬러그혼 교수로부터 천재라는 찬사를 받는 데 도움을 주는 낡고 오래된 마법약 책의 원래 주인이다. 소설은 이 부분을 대단히 중요한 축으로 끌고 가지만, 영화에선 한 편으로 미뤄둔 감이 있다. 왜냐면 영상적으로 재밌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혈왕자와 해리 포터와의 관계는 마지막 시리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은 호크룩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둠의 마법인 호크룩스란 마법사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쪼개 특정한 사물이나 생물에게 담아두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 불멸의 삶을 원했던 볼드모트는 오래 전 슬러그혼 교수로부터 호크룩스라는 마법을 알게 되었고, 이후 자신의 영혼을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 등장했던 리들의 일기장을 비롯해 곤트의 반지(영화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입수한 반지로 소설에선 반지의 내력 등에 대해 자세하게 나온다), 슬리데린의 로켓, 후플푸프의 잔, 래번클로의 왕관, 자신과 항상 함께 다니는 뱀의 왕 래기니, 그리고 시리즈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지는 그 무언가에 분산해 담아둔다. 이제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해리 포터와 헤르미온느, 론은 학교를 그만 두고 볼드모트의 호크룩스를 찾아 파괴해 나간다.
이와 함께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이들인 만큼, 청소년기의 가장 큰 화두인 애정문제 또한 중요한 축을 차지하며 전개된다. 어쩌면 이런 부분이 <해리 포터> 시리즈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과 괴리된 판타지 세계를 다루면서, 동시에 현실의 그 나이대 아이들이 경험할만한, 그리고 공감할만한 고민을 함께 늘어놓는 것 말이다. 초 챙과의 첫 사랑에 실패한 해리는 론의 동생 지니에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헤르미온느는 론과 라벤더 브라운의 애정 행각을 보며 끓어오르는 질투에 눈물을 흘리고, 이를 간다. 소설에선 헤르미온느가 작은 새를 만들어 론을 공격하는 장면이 꽤나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영화에선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주요하게 이 세 개의 축 - 혼혈왕자의 정체, 호크룩스, 주요 인물들의 애정 - 을 중심으로 전개되다 보니 영화는 전체적으로 좀 산만하기도 하고, 오락가락한다. 그러다보니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루하게 느낄 여지는 분명히 있다. 거기다 시간도 만만치 않고. 특히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가 별도의 독립된 챕터라기보다는 시리즈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한 일종의 예비 동작, 마지막 징검다리 역할이라는 것이다. 물론, 같은 이유로 마지막을 즐기기 위해선 더욱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 원작 소설의 마지막엔 호그와트로 침입한 어둠을 먹는 자들과 호그와트 학생들과의 격렬한 싸움이 전개된다. 이 와중에 론의 형이 늑대 인간에게 물리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에선 이 부분이 완전 소거되어 있다. 소설의 가장 하이라이트를 제거하다니. 왜 그랬나 했더니, 마지막 시리즈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의 마지막 전투 역시 호그와트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의 싸움이라는 이유로 이번 영화에선 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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