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age Grace"라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제목인가. 그리고 그 모순이 너무나도 이 영화의
속내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합성수지를 개발해 일약 벼락부자가 된 레오 베이클랜드의
자손인 베이클랜드家의 은밀하고 폐륜적인 비극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매우 히스테릭한,
상류층의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엄마 바바라 역의 줄리안 무어의 연기가 가장 돋보이는
영화이다.
아들 안토니가 어렸던 시절, 자신이 가진 여인의 매력으로 때마다 남편의 애정과 눈길을
붙아두었던 바바라는 안토니가 성인이 된 후,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자신을 떠난
남편 때문에 원래도 정상적이지 않았던 성격이 더욱 비관적이고 괴이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점차 어머니인 바바라에게서 멀어지는 아버지 덕분에 바바라의 남편역할을
도맡아왔던 아들 안토니는 아버지의 완전한 외도와 외면으로 완전히 그녀를 떠맡게 된다.
바바라는 더욱 아들인 토니에게 집착하게 되고 그런 어머니를 가여워하고 이해하면서도
그 모든 일상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안토니는 갈수록 변덕스럽고 우울한 성격으로
변모한다.
흔히들 세습적인 부유층에게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명예와 권력, 부를 시기하고 동시에 동경하기에
그런 말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세비지 그레이스"는 이러한 은수저의
운명이 아주 쉽게 지독한 비극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바바라는 애초에는 상류층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부자남자와의 결혼을 어머니로
부터 세뇌당하시피 했고 마침 자신이 가진 숨길 수 없는 아름다움 덕에 대대로 갑부인
브룩스 베이클랜드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는 남편으로 인해 엄청난 신분상승을 했고
이는 엄청난 성취감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언제고
남편의 사랑이 떠나갈까 그를 말로써 행동으로써 시험했고 자신이 지나쳤다고 느끼면
자신이 가진 매력으로 남편의 어긋난 마음에 되돌려놓고는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스스로도 잃어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 매력을 남편이라고 눈치채지 못할까? 게다가
바바라는 그러한 매력과 아들 안토니의 어머니라는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 피곤하고
시끄러운 여자일 뿐이었다.
브룩스는 영화 초반(안토니가 어렸을 적)에는 질투심이 과할 정도로 아내인 바바라를
사랑했다. 물론 그것이 정신적이기 보다는 성적인 것에 가까웠다고 해도 바바라의
이상하고 짜증스러운 돌발행동을 이해해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었다, 분명......
하지만 아내의 매력은 점차 퇴색하고 남은 것은 참을 수 없는 그녀의 허세와 짜증뿐
이었다. 게다가 천사같다고 여겨왔던 아들 안토니는 일찍이 동성친구와 대놓고
잠자리를 하고 있지를 않은가. 브룩스도 역시 다른 아버지들처럼 동굴안으로 깊숙히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젊고 매력적인 새 여자와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났고 아들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았다. 이는 브룩스가 안토니를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본다. 어떻게 봐야할 지를 결정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브룩스는
성실하고 혁신적이었던 증조부 레오 베이클랜드를 굉장히 존경함과 동시에 부친인
조지 베이클랜드의 방탕함을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풍요로움으로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브룩스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부친과
닮은 듯한 아들의 행동 또한 경멸했다.
결국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 안토니(이하 토니)는 태어난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천사같은 모습에 모두가 눈길을 주고 깨어질 듯한 부모님의 사이도
눈치챌 수 없었을 때이니까. 바바라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며
자랐고 그 와중에 동성에 대한 스스로의 애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다지 숨기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인 바바라는 이를 이해하는 듯 보이면서도 그에게 여자
를 가르치려고 부단하게 노력한다. 히스테릭하고 애정결핍인 어머니를 부양하는 것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토니를 괴롭게하는 것은 바바라가 여자로서 요구하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애정을 아들에게 요구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들을 토니가 긍정하도록 강요했다. 정작 애정과 보살핌이 필요
한 것은 토니 자신이었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늘 그를 물고 늘어졌다. 그는 갈수록
마약에 빠지고 우울해지고 변덕스러워졌다.
이 영화는 노출장면도 많고 베드신도 많은데 게다가 그것들이 꽤 폐륜적이어서 충격
적이까지하다. 동양권 사람들은 절로 혀를 내두를, 아니...누구라도 혀를 내두를만한
야만적임을 볼 수 있다. 엄마와 엄마의 애인과 아들의 관계, 아들의 첫 여자를 뺏은
아버지......같은 극장의 다른 사람들이 때마다 경악스럽게 내뱉던 감탄사를 잊을 수
가 없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불안정하고 불편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비정상적인
관계와 하나같이 결핍되어 있는 성격의 인물들 뿐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의외로 의상이었다. 겉치레를 좋아하는 바바라의 화려한
그러면서도 우아한 의상들과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을 오가며 변화하는 안토니의
의상들 또한 매력적이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신경질적인데 그 안에 종종 묘하게 우스운 대사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재미나 위로를 느낄 수가 없다. 시작부터 빠르게 비극
으로 치닫고 있어서 후반부로 가면 그 콩가루 집안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고개를
가로젖게 된다. 한편으로 토니가 정말 무슨 죄인가 싶기도 하다. 그는 천사같은 아이
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외면하고 방관하는 아버지와 자신을 속박하고 좌지우지하는
어머니 때문에 폭력적이고 괴이한 사람으로 성장해버렸다. 화려하고 담이 높은 그들
의 삶이 결코 해피엔딩으로만 끝날 수는 없음을 너무나 강조하고 있는 영화다.
비상식적인 전개를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비추, 이 여름의 무더위를 날리고자 하는 분도 비추.
하지만 부자들이 너무 잘먹고 잘사는 것만 같아 배아픈 분들에게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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