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는 세세한 것까지 신경쓴다고 해서 이미 유명해진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함께 하는 배우들로 하여금 무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는데 덕분에 그의 영화에는
스토리 전개와 결말과 관련하여 나오는 장면들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것에서
오는 생뚱맞은 대사와 행동 등의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꽤 들어있다. 이런한 장면들은 소위
없어도 상관없는 장면들이기는 하지만 그런한 장면들 덕에 극 전체에서 풍기는 느낌과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진 성향을 관객이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의 전작에
비해 '마더'는 위와 같은 부수적인 씬들이 거의 없다. 갑자기 기억의 파편처럼 끼어드는 영상,
괜히 길게 잡는 것 같은 씬에는 반드시 그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었다. 칸 상영 이후에 전작
들에 비해 유머가 없고 어두운 영화라는 평이 주였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일단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했던 장면을 들라고 하면 그것은 김혜자가 허허벌판에서 춤을 추는
오프닝이라고 하고 싶다. 마치 '마더'라는 제목만 보고 국민 엄마 김혜자를 떠올린 채 들어왔을지
모르는 소수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런 게 아니다'라고 통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놉을
대충 읽고 간 나에게도 약간은 남아있었던 국민 엄마 김혜자는 오프닝 이후에는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흐물흐물한 춤사위와 살랑거리는 음악의
묘한 조화로 표현해냈다.
이 영화를 다보고 든 생각은 '아들은 꼭 원빈이어야만 했다'와 '저 놈 바보 아닌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다. 봉준호가 표현하고 싶었다는 미친 엄마, 그 광기의
합당한 이유가 되어야할 것은 바로 아들이다. 사슴같은 눈망울로 베시시 웃어대는 목숨같은
아들, 그러면서도 김혜자에게만이 아닌 관객 모두에게 그러한 존재로 비춰져야 할 사람이라는
점에서 원빈은 정말 딱인 캐스팅이었다. 미친 엄마가 하는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모든
행동은 아들 도준이 원빈이라는 점이 상기될 때마다 아주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아들이 원빈이라서가 아닌 만약 내 아들이었고 그런 상황이라면'까지
생각이 미치고 그 이후에는 더욱 김혜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수도 있다. 남자들에겐 적용 안 될 지도^^;;)
게다가 예고편과 시놉 등에서 바보로 그려진 듯했던 아들 도준은 의외로 그렇게까지 바보가
아니었다. 남들이 크게 반응할 법한 것에 대해서 별반 동요가 없다거나 특정 감정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해보이기는 한다. 이런 어정쩡한 바보 상태라는 도준의 설정은
그가 툭 던지는 말, 행동, 표정, 시선처리 등에 묘하게 날카로운 점이 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깨달았을 때의 충격을 노린 것으로 느껴졌다.
이 영화는 객관적인 전개가 아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이는대로 따라갈 수 밖에는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어? 이거 아닌데'하는 생각이 든다.
중반부가 넘어가서 막 후반부로 접어들 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엄마의 입장이라고.
이 영화의 전개 방식은 순전히 엄마에게 맞춰져있다. 우리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 그렇다고 믿는
것을 절대적인 것인양 계속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거의 끝날 무렵에 겨우 아, 그렇네 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진태에 대한 묘사에 있다. 진태를 따라가는 시선은 극 초반, 중반, 후반 전혀
다르다. 바로 엄마의 진태에 대한 느낌이 극 후반으로 갈 수록 유하게 변화하는데에 있다.
요즘 안 그래도 사는 게 우중충한데 어두운 영화는 질색이라는 분께는 강력하게 비추합니다.
전작들에 비해 유머 포인트도 별로 없기 때문에 웃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엄마의 모성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은 신선했지만 엄마랑 같이 가서 보니 씁쓸.
그냥 친구나 동료들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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