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사기극이라기보다는 잔잔한 감동의 드라마라고나 할까?
제가 어렸을 적 '스팅'이라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이 주인공으로 나와 로버트 쇼를 혼내주면서 보여 준 완벽한 사기극을 다룬 영화였지요. 1973년도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제가 본 영화 중 최고의 사기를 보여 준 영화였습니다. 물론 사기는 범죄입니다만 스팅에선 힘센 악당을 혼내주기 위해 힘없는 정의가 행할 수 있는 유쾌한 사기극 정도로 생각하며 통쾌함과 재미를 만끽하였습니다. 그 뒤로 '오션스' 시리즈가 사기극을 중심으로 재미를 주고 있지만 스팅에서 느꼈던 기막힌 반전 (보는 관객들도 깜빡 속은)을 주지 못하는 2% 부족한 사기극의 아쉬움을 느끼 던 중 [천부적인 사기꾼 형제], [인생을 건 한판 승부]라는 카피 문구를 내걸며 관객들을 유혹하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번 영화에는 설레이는 사기극의 기대와 함께 마크 러팔로, 애드리안 브로디, 레이첼 와이즈 가 주연으로 등장하고 있어 그 기대치는 높을 대로 높아만 갔죠.
영화는 그들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여 주며 그들이 '사기'라는 재능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며 시작합니다. 그 이후 나이가 들어서까지 사기행각을 이어가던 블룸은 (에드리안 브로디) 더 이상 형의 쓰여진 인생을 살기 싫다며 형과 이별을 고하게 되죠. 하지만 3개월 뒤 형의 또 다른 제의를 받고 만나게 된 페넬로페 (레이첼 와이즈)를 보고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사기극에 동창하고 맙니다. 그들은 정말 마지막 큰 사기극 한탕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될까요? 그리고 마지막 인생을 건 사기극은 어떤 내용이며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요? 블룸 형제 사기단의 4명 중 일본 여배우 '키쿠치 린코'를 제외하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아기자기한 드라마적 극 진행은 기대만큼의 만족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배우들의 면면을 보자면 레이첼 와이즈가 새로운 매력을 보여 준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연기자들은 이전 대표작품보다 못 미치는 수준의 연기를 보여 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가장 이해 안가는 인물 설정인 뱅뱅 (키쿠치 린코)은 영어가 안되서인지 대사 한마디 한 뒤로 거의 바디 랭귀지와 표정등으로 끝까지 밀고 가는데요... 도무지 왜 그녀가 사기단의 일원으로 꼭 필요한 인물인지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했지만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닌 만큼 기억속에 오래 남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블룸의 형이자 사기단의 Brain인 스티븐 (마크 러팔로)은 인생 자체가 거짓으로 채워진 인물로 사기극의 모든 각본, 연출, 감독을 맡아서 하지만 동생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이기도 합니다. 그가 보여주는 마지막 사기극 한방이 어쩌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사기인데요... 그 사기를 위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내용과 연기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물 수준입니다. 2007년도 작품 '레저베이션 로드'에서 한순간 부주의로 다른 사람의 아들을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의 연기에서 보여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그가 받았던 죄의식속의 삶에서 받는 형벌은 더 참혹햇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연기와 비교해 보면 배우의 개성이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캐스팅이라고도 볼 수 있죠.
블룸으로 등장하는 애드리안 브로디도 거짓되고 쓰여진 삶을 살며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동을 벗어나려 하지만 형과의 인연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삶, 그리고 사기를 쳐야하는 페넬로페와의 뜻하지 않은 사랑으로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고뇌하는 블룸을 비교적 잘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마른 몸매에 어울리는 패션 감각, 모성애를 자극하는 듯한 외모와 친근하고 다정한 태도등... 진정한 작업남의 이미지이죠... 물론 그도 유태인 학살 속에 살아 남은 예술가의 고뇌를 다룬 '피아니스트'에 연기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워낙 다른 인물을 연기하려다 보니 감동적인 연기까지 기대하기는 좀 무리가 있는 배역이긴 합니다.
그래도 배역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분이 있다면 단연 레이첼 외이즈입니다. 그녀는 돈은 넘치고 넘쳐 람보르기니를 수없이 부셔대는 취미를 모으는 습관을 가진 미스테리 우먼입니다. 혼자치는 탁구, 저글링, 외발 자전거타기 등등 남는 시간으로 후회없는 삶을 보내기 위해 해보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해보는 적극적인 페넬로페라는 여성을 연기했습니다. 캠브리지 대학 출신다운 지적인 이미지에 미모까지 겸비한 그녀는 한마디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극대로 발산하고 계십니다. 거기에 고난이도 사기극을 눈치채지만 그것으로 끝인 쿨한 성격까지.... 그녀는 마치 지금까지 보여 줄 수 없었던 자신의 매력을 이 한편에서 보여 주려 한듯 수많은 모습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블룸과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은 지금껏 봐온 키스 장면 중 기억에 남을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영화 중 최고의 배드씬도 그녀의 영화인데요... 주드로와 열연한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되시겠습니다. 전쟁 중 옆의 다른 사람들 자는 사이에 몰래 사랑을 나누는 그 장면은 정말 숨겨진 여백의 여운이 주는 강렬함처럼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러브씬입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원제목 (The Brothers Bloom) 처럼 사기극이 주된 내용은 아닙니다. 원제목에 '사기'라는 단어는 없죠... 우리나라에서 붙인 '블룸 형제 사기단'이란 제목에서 '사기'라는 제가 보고 싶은 부분만을 강조해서 보다 보니 이번 영화도 스팅과 같은 사기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오해를 한 것이죠. 이번 작품은 블룸 형제간의 이야기가 주된 핵심이며 영화에서도 그들이 펼치는 사기극을 크게 강조하고 있진 않아 보입니다. 때문에 '스팅'이나 '오션스'와 같은 마지막 사기 엔딩의 재미를 느끼시고자 극장에 앉아 계신 분이라면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분들을 위한 마지막 사기극은 있습니다. 하지만 감동적인 형재간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사기 수준이라고 해야 겠네요.
역시 사기라는 것은 자신이 믿고 싶은 생각대로 본 뒤 행한 행동에 대해 아쉬운 결과가 남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프라하, 맥시코, 도쿄 등을 누비며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레이첼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따듯한 형재간의 사랑을 보시고 싶은 분들께는 딱 맞는 영화입니다. 저도 영화속 그녀처럼 마치 사기를 당한 듯 하지만 쿨하게 영화가 준 또 다른 매력을 위안 삼아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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