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운명에 기댄 거대한 전쟁... ★★★
아주 오래 전, 친구 두 명과 영화를 보기 위해 종로의 밤거리로 나섰다. 딱히 어떤 영화를 보자고 결정하고 나선 건 아니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터미네이터>의 포스터를 보고는 좀 으슥한 곳에 있기도 하고 동성애자들이 많이 온다는 이유 때문에 잘 찾지 않던 허리우드 극장(아마도 내 기억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과는 대만족. 1편이 한국에서 큰 흥행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땐 객석에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편은 특수효과와 마지막의 비장미 등을 무기로 큰 흥행을 거두었고, 3편도 그럭저럭 흥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에겐 아직도 1편이 시리즈 중 최고로 기억되고 있다. 그건 볼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드라마로서도 꽤 짜임새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사라 코너가 카일 리스의 아기를 밴 채 주유소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마치 인장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아무튼 크리스찬 베일이 존 코너를 맡으며 새로운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3편의 마지막인 심판의 날 이후의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파괴된 지구, 기계에 맞서 싸우는 저항군의 모습. 저항군을 이끄는 존 코너는 실수로 대원들을 모두 잃고는 부대로 복귀한다. 이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이야기 하나. 마커스 라이트(샘 워싱턴)는 사형을 앞두고 연구 목적으로 시신을 기증한다는 문서에 서명한다. 분명 사형이 집행되었음에도 그는 시간이 지난 후 깨어난다. 마커스는 거리를 떠돌다 아직은 청소년인 카일 리스(안톤 옐친)를 만나 동행하게 되고, 카일 리스가 터미네이터에 잡혀간 뒤 여전사인 블레어(문 블러드굿)를 구해주고는 저항군 기지로 가서 존 코너를 만나게 된다. 존 코너는 마커스로부터 카일 리스가 ‘스카이넷’에 잡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스카이넷’으로 잠입해 들어간다.
우선 이 영화가 제공하는 액션장면은 <트랜스포머>같은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라든가 <우주전쟁>, 심지어 애니메이션인 <볼트>의 장면이 연상될 만큼 독창적이진 않지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마커스와 카일 리스가 터미네이터에 쫓기는 장면은 숨 가쁘면서도 거대하다. 여기에 기존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한 종류의 터미네이터가 이끌어가는 반면, <터미네이터 4>에는 초대형 로봇, 전투기형 로봇, 오토바이형 로봇, 해저 로봇 등 다양한 터미네이터들이 등장해 더욱 다채로운 장면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들 로봇들의 파괴력은 T-800 등장 이전의 구형이라 그런지 파괴력 면에선 떨어지는 감이 있다.
이렇듯 거대한 볼거리 위주로 진행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영화는 드라마에도 나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긴 하다. 마지막 부분, 마커스의 역할이 밝혀지기까지의 흐름도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존 코너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저항군 리더로서의 존 코너, 기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로서의 존 코너의 힘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수로 대원들을 죽게 만드는 초반부 장면에서 보듯이 대단한 전략가도 아니며, 일대일 능력에서 뛰어난 전사도 아니다. 심지어 그는 사령관도 아니다. 다음 영화에서 드러나긴 하겠지만, 이 영화로선 왜 그가 인류를 구할 운명인지 알기 어렵다.
그리고 기계들이 그렇게 장기간 계획을 세워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세운 마지막 작전이란 게 그저 스카이넷으로 끌어들여 T-800으로 죽이려 한다는 것도 너무 허무하다. 존 코너가 카일 리스를 목숨 걸고 구하려 한 이유가 바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인데, 그렇다면 기계는 잡힌 카일 리스를 죽이면 되는 것이지 굳이 존 코너를 기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장 결정적으로 선뜻 <터미네이터 4>에 마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과도한 개인 영웅주의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특정 개인으로 인해 역사 발전이 빠를 수도, 또는 후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저항군이 사령관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사령관의 명령 자체가 가지는 비인간적 속성, 존 코너가 말했듯이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휴머니즘에 대해선 별개로 하고) 모든 저항군이 존 코너의 부탁(명령이 아닌)에 손을 들어주는 장면은 결국 집단 대 집단으로서의 전쟁이 가지는 속성에 대한 의도적 기피로 보인다. 앞에서 말했듯이 왜 이 영화에서 그렇게나 많은 저항군과 시민들이 존 코너라는 이름 앞에 모든 인류의 운명을 거는 것인지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종교적 선험론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 그가 인류를 구할 것이니’
※ 기계는 인간을 정복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닮으려 하고, 인간 저항군의 지도자인 존 코너는 결국 기계 인간의 심장을 받아 살아남는다는 건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건 어쩌면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이 뱀파이어 사냥에 나선다는 <블레이드>의 기본 설정과 동일하다고 느껴진다. 결국 적을 이기기 위해선 적을 받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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