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와 드라마라는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준 봉준호의 힘이 느껴진 '마더'. 괴물에서 가족애를 보여주었다면 이번엔 엄마의 힘을 볼 수 있는 모성애.
극장내 일순간 정적속에 묻혀버린 시간.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왔던 것에 집착해 나름 범인을 밝혀 보려 한 시간이 혼돈과 절망으로 변해버린 그 시간. 숨 쉬는 것도 잊고 오로지 화면만 바라 보았습니다. 왜 저걸 몰랐을까... 혹은 이제 어찌되는건가.... 정말 만감이 교차하고 아타깝고 서글퍼지게 한 5분의 시간이었습니다.
'마더'는 엄마가 아들의 무죄를 스스로 밝히기 위해 홀로 싸우는 처절함이 압권인 영화입니다. 관객들도 진범을 밝혀 내기 위해 영화가 시작하면서 보여지는 많은 것들을 기억하려 애쓰고
사소한 것들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대사나 행동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표정들까지... 모든 단서를 모으고 종합하여 진범을 찾아 내려 하죠. 마침내 진범이 밝혀 지는 결정적인 단서가 담겨진 5분의 시간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마치 쏘우에서 범인이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 그 시간의 충격과 반전이랄까요?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관객을 속이기 위해 준비한 듯한 초반부와 중반부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관객의 허를 찌르는 한방으로 관객들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충격적 장면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마더는 진범을 찾아내는 것만이 관전 포인트는 아닙니다. 마더를 보았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가 재미있는지를 물어 봅니다. 영화의 재미와 느낌은 보는 관객마다 다르기 때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지만 이번 영화처럼 영화의 한 장면으로 전체 영화의 느낌을 알 수 있었던 영화도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영화가 시작하면서 보여지는 김혜자님의 첫 장면인데...
처음엔 그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표정한 듯하면서 우는 듯하고 약간 웃는 듯한 복잡 미묘한 표정... 얼굴을 가리다가 흐니끼는 듯한 어깨의 들썩임 등은 앞으로 어떤 느낌을 받을 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점점 광기어린 인간으로 변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또 약재를 작두로 자르는 장면도 불안스럽고 섬뜩함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번 영화는 김혜자라는 배우가 연기에 관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각 상황마다의 표정엔 즐겁거나 슬픈 단순한 표정만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 좌절과 분노를,
기쁨 속에서도 무언가를 참고 있는듯한 ....
천의 얼굴을 가지신 연기자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더군요. 자식을 위해서 연약한 여자였지만 무심하고 멀게만 있는 공권력을 대신해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서는 강인하고 광기어린 모성애라는 힘을 가진 어머니를 잘 보여줍니다. 아니... 처절하게 보여 준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요?
남자는 절대 알 수 없고 여자라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 단어가 가진 진정함을 알 수 없다는
'모성애'. 신이 아님에도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여 그 생명을 탄생시키는 위대함과 그 생명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만드는 성스러움. 뱃속에 생명과 자신의 생명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조금의 망설임없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모성애라는 힘을 마더는 김혜자라는 대배우를 통해 관객에게 각인시킵니다.
그런 대 배우에 뒤에 있던 아들인 원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워낙 연륜과 연기력에 차이가 있음 때문인지 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잘 생긴 연예인들이 연기를 위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출연하면 거의 연기력 논란에 휩싸입니다. 한때 원빈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력은 봉감독도 믿음을 가지고 이번 작품에 그를 선택하게 했을 겁니다.
잘 생긴 얼굴을 가졌음에도 바보로 놀림을 받을 정도로 행동이나 말에 미숙한 아들. 자신이 하지 않았던 일도 뒤집어 쓰고 한참 뒤에서야 그 일을 기억하는 어리석음이지만 자신을 놀리는 사람들에게 꼭 복수를 하는 아들 역할에 최선을 다한 배우 원빈. 김혜자와 함께 연기를 했다는 것과 그분의 연기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작품으로 보일 정도로 그의 진정한 매력은 작게만 보입니다.
이런 몇가지 것들로 보면 제목은 약간 의외입니다.
왜 굳이 마더라는 영어 제목을 사용했을까요? '모성애'를 제목으로 할 수 없을 것이고 왜 '엄마'로 결정하지 않았을까요? 세계 시장을 공력하려는 의도도 있을 지 모르지만, 엄마라는 의미는 왠지 이번 작품이 스릴러의 이미지이기에 다소 강한 느낌의 단어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왠지 엄마라는 단어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부터 주기에 강렬한 느낌을 주는 단어로 본다면 마더가 더 적합했지 않을까요? 그래도 제목은 왠지 아쉽긴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 세상에 탄생할 수 있게 해 준 엄마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리고 지독히도 가난하여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쌀떡녀'라고 불리면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어린 소녀... 힘없는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멀리 있는 공권력과 함께 이런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에 우리나라는 힘든 곳인가 봅니다. 그런 그녀를 이용하여 자신의 성적 만족을 채웠던 남자들... 일부 어린 학생들까지도 이런 생각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더욱 허탈해짐을 보았습니다.
정말 기억을 지우는 그런 신체의 부분이 있을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군중으로 섞이며 춤을 추는 모습은 더 이상 진범을 찾기 위해 광기어린 엄마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모든 지우고 싶은 기억을 지운채...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이 영화를 기억할 겁니다. 그 충격적 시간과 결말... 그리고 지금껏 괴롭혀 드리기만하고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지 못한 엄마를 ... 기계인간 마저 누른 엄마의 힘...
역시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위대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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