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영화를 보다보면 시셋말로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우가 많다. 무슨 얘긴고하니 영화를 보기전 주변의 평가를 많이 참고하게되는데, 그 평가가 내가 실제 영화를 본 이후의 감상과 맞지않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이다.
주변의 평가라야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있겠지만 주류는 신문 등 언론매체의 영화평이나 여기 movist같은 영화매니아층의 평가를 나는 대부분 참고를 한다.
그런데 '과속스캔들'이나 '쿵푸팬더'같은 영화는 내가 보고들은 영화평가와 평점 또는 관객수에 비교해서 나를 적잖이 실망시켰던 영화들이다.
날카로운 분석과 심미안적 평가를 잘 하기로 소문난 한국의 영화관객들인데 요즈음 나의 선호도나 평가와 가끔은 동떨어진 경우를 보게되는데....
과연 그런 일이 왜 일어날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가 영화를 보는 눈과 일반적인 대중들이 보는 눈이 많이 다르다기보다는 영화를 보기전 내가 주위에서 들었던 영화평과 감상을 선입견으로 영화를 보기전 내 마음의 바닥에 깔고 감상을 하는 것이 직접적인 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례로 영화개봉이 된 한참후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보았다가 대박영화를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예를 들어 '나비효과'같은) 이런 나의 추론이 과히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각설하고 주위의 평을 들으며 단순히 살인혐의를 받고있는 아들의 무죄를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끝내는 그 결백을 밝혀내는 진한 모성애의 영화라는 베이스를 깔고 본 영화 '마더'는 그런 나의 예상을 보기좋게 깨주는 영화였다.
영화는 모성애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랑과 증오사이의 갈등, 복수와 미련의 사이의 혼돈 그리고 정의와 불의사이의 대립 등
여러가지 복선을 깔고 있는 영화이다.
어느 영화매니아는 이 영화가 아들 도준이의 계산된 복수극이라는 평도 내놓았고 첫 신과 라스트 신에서 보여주는 배우 김혜자의 신들린 굿판이 인간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번민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전체의 축약된 시놉시스라고도 하였다.
나름대로 각각의 개인이 다른 눈으로 평가해준 영화평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는 이 영화에 대한 관점은 관객들에게 비교적 명쾌하게 보여주는 범죄와 범인의 내용이 매우 다른 각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데 있다.
즉 여러가지 시나리오나 복선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준이가 석방된 후 보여주는 정상인에 가까운 행동들. 기억할 수 없는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을 기억하는 도준. 철물상 노인에게만 의존하는 범죄의 재구성 등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진범은 바로 도준이라는 설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지가지 정황들이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는 느낌이다.
과연 도준이가 진범이냐는데에는 여러가지 다른 해석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마더'이다.
그럼 마더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본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마더'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아들' 또는 그런 '아들'들과 딸들(문화정 같은)을 피해자로 모는 사회적인 편견과 아집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 영화는 글로서 관객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영화는 화면으로서 주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그런데 글에서도 가끔 찾아볼 수 있는 복선이 영화라는 매체에서는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다양하게 숨어있을 수 있다는데서 영화라는 존재의 매력이 있다.
서로 다른 관객이 서로 다르게 평가하는 영화내의 복선....
그런 복선이 아주 많았던 영화가 바로 '마더'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괴물'에서는 직접적으로 메세지를 전하려던 봉 감독이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복선을 영화 곳곳에 메세지형태로 숨겨놓아 관객들로 하여금 보물찾기 놀이를 하도록 만들었다.
스릴러와 서스펜션에서 끝난 관객들이라면, 적어도 보물찾기를 하는 관객들에게 우리 같이 놀아보자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지혜를 필요로 하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P.S) 영화의 에필로그가 올라가며 이어진 출연자 소개에서 '문방구 게임기앞 중딩'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했었다. 언제부터 '중딩'이 한글의 보통명사가 되었는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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