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만(!) 그럴듯하다... ★★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로워지면 일반적으로 그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예술품에 대한 기호라기보다는 투자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런 우매한 초짜 그림 수집가를 상대로 하는 사기극이 횡행하는 것 같고, 사기극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조차 진위 여부에 있어서 명확한 정답을 내 놓지 못하는 걸 종종 본다. 가장 대표적으로 박수근 화가의 작품에 대한 논란은 TV에서 다큐멘터리로 다뤄질 정도로 흥미진진한 소재다.
아무튼 영화 <인사동 갤러리>를 보면 과연 우리나라 그림 시장에 진품이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품게 된다. 문서로만 내려오던 조선시대 궁중화원 안견의 <벽안도>가 일본에서 발견되자 국내 최대 갤러리 비문을 운영하는 배태진(엄정화)은 거액을 들여 이를 입수해 ‘신의 손’이라 불리는 복원기술자 이강준(김래원)을 불러들인다.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복원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강준은 배태진이 주도한 밀반입 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 인물이다. 복원에 성공할 경우 경매시장에서 400억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벽안도>. 갤러리 비문은 전설의 그림 <벽안도>를 차지하기 위한 패거리들의 암투장으로 변한다.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실체를 알기 힘든 미술시장, 그것도 밀수, 복제, 밀반출, 정재계 인사들을 동원하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는 등의 소재는 그 자체만으로 흥미를 유발하기는 한다. 게다가 제작진은 미술품의 복제 및 밀수 현장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상당히 괜찮은 때깔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의 장점은 딱 거기까지다.
<인사동 스캔들>에서 우선 거슬리는 건 배우들의 전형적인 연기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연출에 따른 문제일 것이다. 김래원의 연기는 무슨 역을 맡든지 똑같다. 더 이상 발전 없는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입만 열면 욕 외에는 할 말이 없는 듯한 홍수현의 연기는 정말 최악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악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엄정화의 연기도 다른 작품에 비해 심히 처진다. 일부 조연들의 연기는 꽤 좋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처지는 분위기 속에서 그다지 빛을 발하진 못한다.
꽤 속도감도 있고, 리드미컬하게 흘러가는 영화가 왜 긴장감이 없고 처진다고 느껴졌을까? 아마도 이강준의 전능과 배태진의 무능이 결합된 결과일 것이다. 악녀로 등장하는 배태진은 온갖 협박을 늘어놓기는 해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다.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공격하는 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당하기만 한다. 반대로 이강준의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범죄의 재구성>이 재밌었던 건 박신양과 백윤식의 대립이 빚어내는 긴장감에 있었고, 둘은 공격을 번갈아 한다. 물론 박신양도 여유 있게 따돌리긴 하지만, 보는 관객이 백윤식의 승리로 착각하는 순간들이 제공된다. 그래서 긴장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범죄의 재구성>과 유사하다고 보는 일부의 시각이 있던데, 사실 이 영화는 박용우, 이보영 주연의 <원스 어폰 어 타임>과 유사한 점이 더 많다. 전체적인 구성에서 거의 흡사한데, 구성면에선 오히려 <원스 어폰 어 타임>이 더 낫다고 본다. 왜냐면 박용우는 자신이 만든 기회가 자신에게로 올 수밖에 없는 확실한 계획을 세워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강준은 그 부분(이게 핵심일텐데)을 어떻게 보면 운에 맡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덧붙여 말하자면 수배 중인 이강준이 배태진을 면회하고 면회 장소에 아무도 배석하지 않는 장면, 그래서 이강준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당당하게 면회실에서 이야기한다. 다른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재미를 위해 너무 쉽게 리얼리티를 훼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