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영화로서 최소한 기본은 한다.... ★★★☆
아침엔 강화도에 있다고 했다가 점심엔 울릉도에 있다고 하는 여자를 믿을 수 있을까? 자꾸 거짓말을 늘어놓는 애인에게 절망해 헤어짐을 선포하고 러시아로 유학 간 재준(강지환)은 3년 만에 국정원 해외 파트 요원으로 귀국한다. 재준의 애인이었던 안수지(김하늘) 역시 국정원 기업 담당 요원으로 부모에게조차 자신의 정보를 숨겨야 하는 애환을 안고 있다. 우연히 작전 현장에서 마주친 둘은 서로의 신분을 모른 채 동일한 작전에 투입된다. 재준은 러시아 조직을 미행하고, 수지는 위험한 바이러스를 국외 반출하려는 노박사(강신일)를 미행한다.
두 남녀가 서로 정보기관에 근무한다는 것을 모른 채 동일한 작전에 투입되고, 심지어 상대를 적으로 오해한다는 것으로 보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가 연상되고, 덜떨어진 듯한 남성 정보원에 똘똘한 여성 정보원의 결합으로 보면 <겟 스마트>를 포함한 많은 코믹 첩보 영화가 떠오른다. 그만큼 이 영화가 독창적인 건 아니다. 그러나 <7급 공무원>은 코믹 첩보 영화로서 한국적 변주에 성공하고 있으며, 코미디 영화로서 최소한 기본은 하는 영화다.
특히, 대부분의 한국 코미디가 출연 배우들의 개인기에 과도하게 의지함으로서 관객의 식상함에 일조했다면(개인기에 의존한 코미디가 안 좋다는 게 아니라, TV 예능프로그램과의 차별성 부각 실패) <7급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와 연출에 의해 웃음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고 할 수 있다.
<7급 공무원>은 아주 가끔 재준과 수지의 멜로 장면에서 조금 늘어지긴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의 동력을 잃지 않고 시종일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택시로 러시아 조직을 미행하려다가 오히려 에스코트하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러시아 조직의 운전사가 “서울에선 택시를 따라가는 게 제일 빠르다”고 대답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상력이 한국적 현실에 굳건히 발 딛고 선 것이며(알고 보면 조금은 유치해 보이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그런 만큼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유머는 대체로 자잘한 잔펀치, 잽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즉, 유머러스하고 재밌긴 한데 큰 한 방은 잘 터지지 않는다. 그러다 중후반 재준이 러시아 조직원의 정체를 확인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야 비로소 크게 터진다. 정말 크게 터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이 확실히 웃기기 위해 배치한 몇 장면에선 오히려 웃음이 유예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재준의 상관인 원석(류승룡)이 “모든 여자는 믿기지 않거나 믿을 수 없거나 둘 중의 하나야. 안 그런 여자 있으면 손 들어보라고 해”라고 말하는 장면 뒤로 수지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모습을 이어 붙인 장면이라든가 재준이 친구 세균(김형범)의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신태라 감독의 전작인 <검은집> 비디오를 손에 들고 말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거기에 집 대문을 테이프로 붙여 타인의 출입을 체크할 정도로 면밀한 수지가 3년 이상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거나, 재준과 수지가 대단한 비밀요원이 아님에도 국정원 내부적으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것 등은 조금 어설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웃음 코드들은 대단히 신선하고 유쾌하며, 액션장면이 헐리웃처럼 거대하진 않아도 적당한 수준의 볼거리는 제공한다. 거기에 두 주연배우 및 류승룡 등 주요 배우들의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힘을 뺀 연기는 코미디에 힘을 실어준다. 자잘한 문제들을 문제라고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아무튼 계속 웃겨준다. 스스로 릴렉스하고 편안하게 본다면 분명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기획된 영화는 아니라고 해도 <7급 공무원>은 충분히 시리즈물로 발전해도 좋을 기획인 것 같다. 물론 일단 이번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야 되겠지만, 극장에서의 느낌대로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 다만 다음부터는 국정원의 지원 없이 제작했으면 한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선 지원을 받는 게 좋겠지만, 아무래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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