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다... ★★★☆
죽을 패기로 똘똘 뭉쳤지만 자살 시도가 매번 실패로 돌아간 병희(박희순)가 마침내 자살에 성공하려던 그 순간, 수강(강혜정)이 나타나 목숨을 구해주는(?) 대신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자신의 집에서 감금 생활에 처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진다. 온 몸에서 악취를 풍기는 수강, 그녀는 대체 누구이며, 왜 이 집에 들어온 것일까?
왜 수강이 고향 마을에서 ‘미친년’ 소리를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강은 단지 외딴 집에 혼자 살 뿐이며, 그러다보니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설정에 서툴고, 속마음을 숨길 줄 모르며, 약간의 과대망상(?) 증세가 있을 뿐이다. 이런 수강에게 어린 지민(이다윗)의 조그만 배려는 수강에겐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중함이었으리라.
한 소녀의 기구한 삶을 돌아보며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우리집에 왜 왔니>의 닮은 꼴 영화를 하나 꼽자면 그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다. 컬러풀한 옷을 몇 겹씩 껴입은 여주인공의 복장부터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사랑의 배반에 가슴 아파하는 모습까지, 심지어 자신이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면서도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모습까지 둘은 닮았다.(둘 모두 돌아온 자신을 반겨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물론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매 순간 꺾이고 쫓겨나면서도 끝내 삶의 의지와 사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마츠코의 인생을 더듬어 훑고 있다면, <우리집에 왜 왔니>는 수강과 병희, 심지어 지민(승리)이라는 캐릭터까지를 포함해서, 갈 곳 없고, 누군가의 관심을 구하는 그런 불쌍한 인생들의 서로에 대한 비껴가는 시선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비껴간다는 점만으로 보면 아오이 유우 주연의 <허니와 클로버>가 연상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특히 수강이라는 캐릭터를 만듦에 있어 마츠코가 일종의 롤 모델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벗기엔 둘은 너무 닮았다. 물론 닮았다는 그 자체로 <우리집에 왜 왔니>가 폄하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집에 왜 왔니>의 초중반부는 꽤나 유쾌하고 코믹하다. 이야기 자체가 코믹한 건 아니고, 수강과 병희라는 두 캐릭터의 밀고 당김에서 웃음은 끊임없이 유발된다. 특히 약간은 엇박자의 반응을 보이는 병희 역의 박희순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를 맡아 성공적으로 착근하고 있다. 그리고 짧게 끊어 치는 스피디한 연출도 흥미롭다. 그런데 보는 관객의 마음을 적신 욕실 장면(수강이 두꺼운 옷을 벗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 장면)을 정점으로 영화의 장점들은 빛을 잃기 시작한다.
난 이 영화의 후반부가 한국 코미디 영화나 로맨스 영화의 전형적인 단점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정서적 울림, 과잉 감정, 너무나도 세세하고 과도한 설명 - 이것들을 위한 느린 연출. 모든 게 흘러넘친다. 감정도 넘치고 설명도 넘친다. 차라리 결여되었다면 그 빈 여백을 스스로 메워내기라도 할 텐데 흘러넘치는 건 어떻게 퍼낼 여지가 별로 없다. 난 이러한 단점이 주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과도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내가 누구 사랑할 일 없고, 너는 누구한테 사랑받을 일 없는 실패한 인생”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는 기적”이라는 말이 몇 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건 ‘너는 누구가로부터 사랑 받고,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런 기적’을 돋보이기 위한 장치겠지만, 과도한 강조가 과연 결말을 돋보이게 했는지, 오히려 감소시킨 건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그런데 어쨌거나 사랑이 누군가에게 기적인 건 맞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기적을 맞는다는 걸 고려해 보면, 우선 내 주위를 잘 살펴볼 일이다. 혹시 아는가.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을지.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
※ 극장에 들어갔더니 여중 여고생들이 가득하다. ‘왜 이렇게 여학생들이 많을까?’ 별 생각 없었는데, 광고를 보면서 알게 됐다. 빅뱅이 출연하는 핸드폰 광고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꺅꺅’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하... 승리가 이 영화에 출연한다더니 빅뱅 팬들이구나’ 그런데 이들은 아무래도 빅뱅 팬이라기보다는 승리 팬에 가까운 거 같다. 암튼 한 동안 보이지 않던 승리가 처음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한 괴성(?)에 ‘오빠’라고 외치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들 입장에선 승리 오빠의 캐릭터가 좀 불만이었던 듯싶다. 강혜정이 맡은 수강에 대해 연민의 감정이 생긴 시점에 승리가 그 수강을 상대로 욕을 하고 조금은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하자 수군수군 대는 소리가 들린다. 내 바로 뒤의 여학생은 ‘오빠, 욕하시면 안 돼요’라고 안타까운 듯(?) 속삭인다. 영화가 끝나니 오빠의 출연 분량이 또 불만이었나 보다. 얼마 안 나왔다며 연신 불만의 목소리들이 들린다. 보통 과도한 팬덤 문화가 조금은 괴롭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승리 팬의 반응들은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 특별출연으로 오광록, 조은지가 나온다는 말은 들었는데, 무슨 역할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조은지가 나오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아.. 조은지.. 당신 정말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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