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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릿한 영화 "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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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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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lia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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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5 오전 11: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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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류의 종말이 결코 쉽게 오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내일 당장 지구의 멸망이 온다 할 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에 감동을 받는 인간의 속성을 봐도 알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 미래를 예견하며 그에 따른 나름의 대처 능력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고 1년 때인 1992년 불어닥친 휴거 소용돌이에 휩쓸려 단짝 친구가 자퇴를 했었다. 위대한 부활을 꿈꾸며. 결정의 날인 10월 28일, 친구는 살아 있었다.
1. '마고'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부활하다.
'마고'는 자연 파괴, 생명 파괴, 인간성 파괴 등 내리 파괴로만 치닫고 있는 현대문명을 비판하며, 그것에 대한 치유 방법으로 생성, 포용, 부드러움으로 대별되는 여성성의 회복을 통한,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부활을 꿈꾸는 영화이다. 그 부활을 완성시킬 여성성의 상징인 '구름, 그림자, 길, 나무, 달, 대지, 물, 바람, 불, 비, 천무, 파문'의 12정령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현대 물질 문명 속에 참혹하게 짓밟혀 고통받으며 하나 둘 숨을 거둔다. 그러나 역시 인류의 종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씨알 태초의 남자 한웅이 자신의 사랑이자 분신인 '마고'의 고통을 지켜보고, 정령들의 복수심을 잠재우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제물이 됨으로써 원한에 차 있던 정령들은 하나되어 '마고'로 부활한다.
2. 희생은 희생을 부른다.
식상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영화는 숨막히도록 아름답다. 그도 그럴 것이 1만 4천년 전, 민족의 개벽 신화이자 인류 시원의 신화인 '마고'를 복원하여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보다 더 문명의 때가 덜 탄, 태초의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영상을 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의 청정(淸淨)한 자연 그대로의 풍광.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꽃이 향기가 제일 좋은 것은 아니다. 영화 '마고'의 첫 시작은 군화와 탱크의 캐터필터에 짓밟혀 압사하는 수많은 개구리의 울음바다로 시작된다. 친근한 고향의 소리가 소음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인간의 파괴, 혁명, 공격이 가져온 오늘의 충격적 삶을 묘사하는 것은 이쯤에서 그치지 않았다.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아이의 적나라한 모습, 살아있는 사슴의 목을 잘라 피를 마시는 사내들의 희번덕거리는 눈과 검은 피로 물든 입술, 일용할 양식인 줄만 알았던 돼지와 소의 사지가 거침없이 잘려져 나가는 도살장의 모습, 욕정을 참지 못하고 약물과 폭력으로서 여자를 탐하는 끈적거리는 사내의 손길 등은 낙원의 삶과 대별 짓기 위해서 이었을까? 치부를 들어내기 위한 리얼리티. 그러나 필요 이상의 폭력과 피흘림. 희생은 희생을 부른다.
3. 어쩔 수 없는 선택, 한웅과 같은 우리.
인간은 본래 자기 과거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 몸이었던 태초의 사랑 '마고'가 열 두 정령으로 뿔뿔이 흩어져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웅의 모습은 바로 현대 물질 문명의 피해를 고스란히 견디는 우리의 모습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때는 늦었다는. 이미 거기는 다른 세계라는 것. 가고 싶기에 갈 수 없는 유토피아처럼, 긍정하지 못해도 긍정하는 결론처럼,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군상들처럼 이제는 어쩔 수 없음을,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그러므로 한웅이 불가마에 뛰어 들어 스스로 제물이 되는 것은, 사랑의 고마움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자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절실한 행위인 것이다. 이대로의 삶을 견디며 지속하는 것보다는 꽃처럼 미련 없이 떨어져 삶을 마감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한 일임을 이 영화는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4. 새로운 시도,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신화는 그 진실의 무게보다 존재에 가치가 있다. 나와 내 어머니와 내 어머니의 어머니와......결국엔 거슬러 올라 갈 수 없는 내 생명의 뿌리에 대한 탐구. 진실보다 앞서는 것은 신화가 없을 때 찾아오는 상대적인 결핍감이다. '마고' 신화는 낙원의 삶에서의 최초의 어긋남이 씨알 태초의 남자 한웅이 자신의 어머니와 통정을 함으로써 일어난다. 그러나 그 어긋남 보다 가까운 원인은 몰락한 인간성에 있다. 영화는 가치판단이 사상된 무절제한 욕망 그리고 이기주의로 점철된 우리의 삶 즉 인간만을 이롭게 하기 위한 욕망이 불러온 참담함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이룬 생성과 상생의 균형된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마고' 신화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상대적인 결핍감 해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 보다 가치 있는 진리인 것이다. 영화 '마고'는 이 진리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자기 목소리에 충실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다만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최초의 멀티포엠 영화 '마고'. - 성경 말씀에 따르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씀이 원소스 유즈 멀티 포엠에 걸맞은 말인 듯 하다. - 신화를 소재로 한 연작시를 영상으로 담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5. 디지털 시대를 주도할 신예술장르 '멀티포엠'
대학시절, 국문과는 굶는 과로 통했다. 시인이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꿈만 꾸라고 했다. 배곯기 십상이라며. 영화를 보는 내내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했던 부분은 영화 속 어떤 장면도 아니었다. 다만 시(詩)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것. 나처럼 꿈만 꾸는 것으로 멈춰선 누군가에게 힘차게 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영화의 기획자이자 원작자인 장경기 시인은 멀티포엠의 창시자이다. 이 생소한 장르는 시인 개인의 완성되어 굳어진 작품을 타 장르와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여 종합예술로서의 시, 공동, 협력 창작으로서의 시를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즉 시는 문화, 예술이면서 동시에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컨텐츠 상품을 말하는 것이다. 언제나 처음은 어려운 법이다. 기존의 영화 문법에 익숙한 이들은 짱돌을 던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만큼 매혹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시작 단계인 멀티포엠의 최초 완성작 '마고'가 완벽했을리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좋았던 부분이 압도적이었다.
마지막 장면, 부활한 '마고'는 한웅의 뜻을 받들어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는 천신제인 빛알맞이 태양제를 연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와 딱 맞물린 대사가 흘러나온다. "모든 한은 다 내게 두고, 그대들은 빛알인간으로 부활하라. 긴 세월 혼령으로 떠도는 불쌍한 내 자식들아. 세상의 어두운 기운들은 내가 다 가져가리다. 사랑스런 내 자식 들아. 생명들아. 원령들아."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그리고 끝내 눈물 한 줄기를 흘리고 말았다.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인류의 종말은 쉽게 오지 않으리라. 누군가가 내게 왜? 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권해주리라. 영화 '마고'를 보라.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되리라. 대중성과 상품성 면에선 약간 빈약해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나, 영화사에 남을 신(新)장르를 개척한 '마고'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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