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분노를 넘어선 평화를 향한 외침... ★★★☆
배우 문소리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는 제목은 중국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10년간의 기나긴 법정 투쟁이 비록 재판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는 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서 빌려왔다. 영화에 의하면 1992년 일본에선 2차 전쟁 당시 일본군의 강제적 위안 행위를 입증하는 공식 문서가 발견되었고, ‘위안부 110번’이라는 시민단체가 피해 사례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전쟁 이후 일본에 살고 있었던 송신도 할머니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하는 재판에 강한 의지를 보이자 일본의 시민단체와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송신도 할머니의 재판을 지원하는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되었고, 10년이라는 기나긴 법정 투쟁을 이어나가게 된다. 영화는 바로 그 10년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영화의 분위기는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마도 이건 송신도 할머니의 개인적 캐릭터에 크게 영향 받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송신도 할머니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정신대 할머니들과는 좀 다르다. 거칠다고 할까?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들에게까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거침없이 해대고,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기자에게 “내가 하는 말을 쓸 수 있겠냐”며 기자의 자존심을 긁는 발언도 막무가내로 한다. 거기에 행동도 돌발적이고 즉흥적이며, 할머니의 일본어 말투는 마치 욕을 하듯 강한 악센트로 시종일관한다. 한 기자는 할머니의 얘기를 “처음엔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러다보니, 할머니를 돕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던 사람들조차 ‘과연 이 모임이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의 그런 몸짓과 말투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누구도 할머니의 말을 믿지 못했던 지난 시간 속에서 굳어져 버린 할머니의 소통방식임을 알게 된다. 상처 받은 마음을 들키기 싫었던 할머니는 거친 말투와 액션으로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서나 거침없던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로 끌려갔던 16세와 비슷한 나이의 어린 여학생들 앞에 서자 눈물만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인다. 할머니의 상처가 적나라하게 화면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다. 영화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종군위안부를 다룬 다큐멘터리치고는 확 끌어당길 결정적인 한방은 없다. 다만, 민족적 감정에 주로 호소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영화는, 아니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에 대한 분노를 넘어선 인류애적 감성에 호소한다. 물론, 할머니는 일본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가지고 있고, 일본의 재판부, 정치권,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할머니가 진정 원하는 것은 평화다. 할머니는 자신이 당한 고통의 근원이 전쟁 때문이며,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작든 크든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그래도 좋다고 하던가. 전쟁을 반대하는 송신도 할머니의 호소에 답하는 건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부과된 의무일 것이다.
※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는 재판을 청구한다. 10년에 걸친 재판 끝에 재판부는 할머니의 주장을 기각한다. 그런데, 일본 재판부가 모든 걸 부정한 건 아니다. 1심 재판부를 포함한 모든 재판부는 일본정부 및 군이 위안부의 강제 동원에 참여했고 따라서 책임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청구권 시효가 지났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 시민단체는 어쨌거나 재판부가 일본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결과이므로 다른 재판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긍정성에 주목한다. 그런데 일본 극우파는 그렇다 치지만, 서울대 명예교수라는 사람이 TV에서 버젓이 ‘일본 위안부가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주장은 있지만 명백한 증거는 없다’라는 발언을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주장도 개인의 소신이라는 이유로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마음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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