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때문이 아니라 오래 전 기억 때문에 운다.. ★★★☆
가급적 원작이 있는 경우,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편이다. 그런데 <말리와 나>는 책을 사 놓고도 미처 읽지 못하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이 영화에 대해 잘못 생각한 게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영화가 말리의 말썽과 이에 지친 인간들의 엎치락뒤치락 소동극을 그리고 있으며, 양자간(?) 화해로 끝나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말리와 나>는 그걸 넘어서서 끝까지(정말!) 간다. 둘째, <말리와 나>에서 ‘나’는 제니퍼 애니스톤인 줄 알았다. 모든 광고나 인터뷰가 하나같이 제니퍼 애니스톤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말리라는 희대의 말썽꾸러기 래브라도 리트리버종 강아지와 언론인 존 그로건(오웬 윌슨), 그의 아내 제니 그로건(제니퍼 애니스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말리와 나>는 스토리가 그다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그건 개나 고양이 등 반려 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경험해 봤을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개가 뛰놀 수 있는 해변과 바다, 그리고 넉넉한 이웃들이 있는 플로리다라면 개와 편하게 갈 수 있는 공원 하나 없는 한국 애견인들의 입장에선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사실, <말리와 나>는 말리의 19년 견생(犬生) = 존 그로건 부부의 19년 결혼 생활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삶의 일상적인 단편을 넓게 펼칠지언정 깊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처음 강아지를 입양해 개와 부부 사이의 투닥거리는 초반전을 좀 보여주는가 싶더니 존 그로건의 내레이션에 담아 몇 년을 훌쩍 지나버린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아이들과 개의 교감은 전혀 그려지지 않아 아이들과 개가 같이 있는 장면에선 왠지 서로 친한 것 같지 않은 느낌, 심지언 애들이 개를 좀 무서워한다는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상당히 순하긴 해도 덩치가 큰 편이라 성견을 처음 본 아이들은 겁내한다)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는 갑작스런 마지막을 보여준다. 방금 전까지 날라 다니던 말리가 마치 비디오를 몇 배속으로 틀듯 순식간에 병든 개가 된 모습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반려 동물, 특히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제일 야속한 건 그들과 인간들의 라이프 사이클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개는 보통 15년, 많이 살면 20년 정도를 산다고 한다. 그러니깐 개를 키우는 사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나보다 빨리 늙어 세상을 떠날 친구 한 명을 두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말리와 나>는 현재 개를 키우고 있거나 키워봤던 사람들, 특히 개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깊은 공감과 슬픔을 느끼게 할 영화다.
개인적으로 살면서 강아지를 세 번 떠나보냈다. 무지개다리를 넘은 건 한 번이었고, 두 번은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타인에게 보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가 새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집에 들어오셨다. 그 작은 가슴에 손을 댔을 때, 느껴지던 가녀린 심장박동. 그 녀석(똘똘이 - 이름도 참 촌스럽다)도 영화 속 말리처럼 초등학교 내내 집에 들어올 때쯤엔 동네 어귀에서 날 기다리곤 했었다. 집이 아닌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땐 꼴에 어릴 때부터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 때문인지 잘 안 우는 편이다. 그럼에도 <말리와 나>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렀다. 해명(?)하자면 이건 영화 때문이 아니라 내 가슴에 남아 있는 똘똘이와의 추억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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