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불법 체류자가 구제불능 깡패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 씨네서울 20자평은 이러했다. 그래 맞다...틀린 말은 아니다...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단지 불법체류자, 깡패, 러브레터...이런 단어로 결론짓는다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차라리 영화사의 이 홍보성 멘트가 더 함축적인 것 같다.
강재는 미성년자에게 불법 성인 비디오나 빌려주다가 구류나 살고, 동네 오락실에서
행패나 부리는 깡패라는 이름도 안 어울리는 그런 양아치일 뿐이다.
파이란과의 위장결혼 역시 몇푼의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고, 경수를 통해 자신이 매고 있던 빨간 스카프만 건네줬을 뿐, 말 한마디는 커녕 그녀의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파이란은 그런 강재에게 누구보다 감사했고 언제나 그를 잊지 않았다.
"제가 누군지 아세요? 강백련이예요." 파이란이 이렇게 연습한 뒤 비디오가게의 문을 여는 순간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그 상황을 허무하게 쳐다볼 뿐...파이란은 강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가슴 아프게도 두 사람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아직은 세상이 아름답다고...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는데...아니다...나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파이란은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낯선 한국땅에서 그저 자신과 결혼해준 강재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만을 남긴 채 쓸쓸히 죽었다. 파이란의 마지막 편지는 정말 울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난 슬픔보다 왠지 그녀에게 미안함을 앞서 느꼈다...
<파이란>은 일본영화 <철도원>의 동명 원작소설을 쓴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중 <러브레터>라는 단편을 각색하여 영화화 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송해성 감독이 <카라>를 연출했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과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최민식의 양아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실제라고 착각할 만큼 완벽했고, 파이란역의 장백지 역시 그녀의 이미지를 한단계 업시켜주었다. 그녀의 청아한 눈빛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