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에반게리온을 한국에서 그것도 극장에서 보게된 것만으로도 세월이 참좋아졌다는 것을 새삼느끼며 많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국내개봉을 기획한 태원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에반게리온 서 - 21세기초에 다시만나는 세기말의 상상 -
에반게리온이란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전력은 다시 설명하지 않겠다. 1조원이 넘는 수익이라던가 에바 신드롬을 일으켰다던가 하는 내용 말이다. 일반관객들은 애니메이션계의 '서태지' 정도로만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현재의 관점에서 에반게리온이란 작품을 다시 보겠다.
필자는 지난 19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을 보기위해 압구정 CGV를 방문했다. 24일이 최초 공식개봉일이었고 중간에 앞당겨 진터라 보고싶었던 사람들에게는 혼란이 좀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 이 '다음(DAUM)'게시판에도 여전히 에반게리온 서가 개봉예정작으로 되있으니 말이다.
우선 객석은 2/3정도가 차있었고 관객은 남자 회사원끼리 온사람, 연인, 나처럼 혼자, 아이와 엄마등 다른 애니메이션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중도 퇴장은 아이와 엄마 -> 연인 순이었다. 이 리뷰를 읽는 분중에 에반게리온에 대한 확신이 없는 분이 많을 테고 봐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분도 많을 것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오락거리로는 만족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왜냐하면 서론일 뿐이니까)
이번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TV에니메이션의 내용을 축약하였기 때문에 애초 극장판으로 기획된 헐리우드 애니메이션과 달리 기승전결이 없다. 물론 이 영화 한편이 '기'에 해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봐도 TV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된 원작인 만큼 몇가지 사건을 위주로 이야기의 긴장도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점점 고조되는 이야기가 아니므로 지루할 수도 있다는 점은 필자도 십분 이해하겠다.
이번 극장판에서는 사도의 등장과 네르프(NERV)의 반격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애니메이션 내용을 축약한 것이므로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다. 마지막에 원작보다 일찍 '카오루' 가 등장하여 후속작부터는 이야기가 조금씩 바뀔것이란 걸 암시해주고 있다.
에반게리온 전체를 보고나서 내린 한마디 결론은 "이것이 애니메이션이다." 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3요소로 일컬어지는 작화, 스토리, 음악 등에서 모두 최고수준에 이른 이 작품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 왜 극장판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가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3요소별로 해설해보겠다.
우선 작화부문에서 90년대 초반 제작된 것과 2차원 작화는 변화가 없었지만 컴퓨터 그래픽의 대거 도입으로 제3도쿄시의 변형장면이라던가 사도의 공격장면등은 많은 진보가 이루어졌다. 사실 필자의 개인적 취향으로서는 그래픽의 사용을 그리 달가워 하는 편은 아니다. 정확도와 사실감만을 강조하는 그래픽은 많이 사용되면 될수록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 누가 제작해도 똑같은 냉혈 복제인간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애니메이션이라면 무릇 사람냄새가 나야 트랜스포머같은 작품과 차별화 될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부문에서는 서론만을 보여주는데 그쳤지만 방대한 내용을 잘 압축하였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에서는 처음 보는 분들은 아마도 이해가 어려운 용어나 장면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레는 무엇인가? 릴리스는 또 무엇인가? 어디서 나온것이냐?
실제로 TV판 원작에도 무엇하나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매니아들을 끌어들이는 요소인데 작품의 진행중에 보일듯 말듯 하나씩 던져주는 메세지와 단서가 모이면 어느정도 전체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현재 인터넷상에 이에 대한 설명이 많이 올라와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음악이라고 하였지만 사운드 효과까지 모두 포함하는 내용이다. 극장판으로 감상한 에반게리온은 역시 실감나는 사운드 효과를 주었다. 모든 재패니메이션을 이렇게 감상할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미 많은 인기를 얻은바 있는 OST와 더불어 전투신에서 등장하는 기관총 소리와 실감나는 효과음은 사운드가 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장치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사실 이 한편만으로 점수를 주자면 많은 점수를 줄수없다. 작품의 질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결국 서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진행중에 퇴장한 분들이 불쌍하게 보인 것은 그래도 나름대로 대작이라기에 보러왔을텐데 좀 견디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남성취향이 강하고, 성인용에 가까운 만큼 아이들은 가급적 동반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3편의 작품까지를 염두에 두고 볼 생각이 아니라면 전투신만 감상해도 괜찬다.
깊은 이야기는 알필요가 없고 그냥 사도와 지구수비대의 전쟁이라고 생각해도 관계없다.
조금 아쉬운 점은 90년대의 세기말에서 비롯된 전인류적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21세기초에 다시 만났을때에는 그때만큼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웠다는 점이다. 주인공 신지의 고민이 그 때만큼 공감되지도 않았고 인류의 끝없는 진보도 지금에 와서는 그 때만큼 불안감이 상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얘기하는 시기가 이미 거의 임박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세기(신세기)에 사는 필자의 시대적 괴리감은 어쩔수없이 느끼는 한 부분이었다.
중간에 퇴장한 분들때문에 좀 아쉽긴 했지만 서론으로서 이 작품은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많이 보고 반성해야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참. 영화가 끝나고 스크롤이 다 올라간 다음 '파'예고편이 나오는데 고작해야 15초 짜리이니 이걸보기위해 인내하며 기다릴 필요는 없으니 다른 관객들 나갈때 오타쿠 티내지 말고 나가도 괜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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