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형제 관계... ★★★☆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타케루(오다기리 조)는 형 미노루(가가와 데루유키), 어릴 적 이웃이었던 치에코(마키 요코)와 계곡에 놀러간다. 혼자 떨어져 사진을 찍던 타케루는 계곡에 걸린 다리 위에 서 있던 미노루와 치에코가 옥신각신하는 광경을 보게 되고, 뒤이어 치에코는 계곡 아래로 추락한다. 다리 위에 같이 있던 형 미노루가 치에코를 밀어 떨어뜨렸을까, 아니면 구하려 한 것일까. 동생은 일단 형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다고 진술하지만, 형은 자신이 치에코를 죽였다고 경찰에 자수한다. 누가 봐도 정직하고 희생적인 인간이었던 미노루는 재판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뻔뻔하고 자기방어적인 면모를 보인다. 증오심을 드러내며 냉소적인 말을 내뱉는 형을 보면서 동생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 어떻게 진실이 밝혀질까? 이런 식의 스릴러적 의문은 이 영화하고는 하등 관계가 없다. <유레루>는 사건의 발생, 진실 규명 따위엔 관심이 없으며, 이 영화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점은 인간 사이의 감정, 특히 판이하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형제가 지니고 있는 애증의 관계다. 동생 타케루는 고향을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낸다. 남겨진 몫은 오로지 형의 책임이다. 가업을 이어 받아 꾸려가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식을 치르고 괴팍한 아버지를 모시고 온갖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해오고 있다.
간만에 형을 본 동생은 가끔은 과도하게 친절한 형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형은 모든 짐을 자신이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형의 내면이 어떠하리라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치에코를 바래다주러 갔다가 섹스를 하고 밤늦게 돌아온 타케루를 맞는 건 빨래를 게고 있는 형 미노루의 등이다. 이 장면을 보면 사람의 등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가족’은 모든 걸 포용할 것 같지만, 그 때문에 많은 걸 희생하고 감추고 아닌 것처럼 굴어야 한다. 그래서 ‘가족’ 사이의 묘한 긴장감은 공포영화의 주요한 소재가 되기도 하며, ‘가족’은 반대의 의미에서 ‘억압’과 동일한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감옥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형 미노루를 보는 타케루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왜 착하고 순수한 형이 저렇게 냉소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했을까?
묘한 형제의 애증은 자신의 눈으로 본 사실까지도 왜곡시키고 변화시킨다. 사람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소위 ‘선택적 기억’이라는 명제에 의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기도 하고 심지어 없었던 일조차 사실인 것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변호사인 작은 아버지의 현장 조사에 의하면 타케루의 위치에서는 다리에서 말하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지만, 타케루의 기억에선 형과 치에코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렇다고 영화는 무엇이 진실이지 정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지막에 타케루가 깨닫는 것은 다리 위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이라기보다는 형의 마음이다. 그런데 형은 이런 동생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나라면 쉽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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