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미인도’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신윤복과 김홍도의 풍속화
지난 4일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 ‘미인도’는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김민선 추자현의 파격적인 베드씬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시대의 천재화가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도발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해 윤복(김민선) 홍도(김영호) 강무(김남길) 설화(추자현)의 치명적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베드신이 아름다운 영상미로 형상화했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천재화가를 다운 영화답게 영화 속의 이야기가 신윤복과 김홍도의 풍속화를 통해 전개돼 흥미진진함을 더한다. 시나리오 작가는 탁월한 상상력을 발휘해 역사 교과서나 우표, 각종 교양서적을 통해 대중들의 눈에 익은 천재화가의 풍속화들을 스토리 전개의 장치로 활용한다. 마치 이 영화가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먼저 신윤복의 그 유명한 풍속화 ‘단오풍정’은 윤복과 첫사랑 강무가 가까워지고, 윤복이 남장여자임이 탄로나는 장면으로 활용된다. ‘단오풍정’은 단오날 기생들이 개울가에서 가슴을 노출하며 목욕하는 모습을 동자승들이 훔쳐보는 그림이다. 윤복과 강무는 퐁속화를 그리려고 동자승과 함께 목욕 장면을 엿보다가 들켜 도망친다. 그러다가 윤복은 개울물에 빠져 몸이 흠뻑 젖고, 봉긋한 가슴선과 둔부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홍도의 ‘씨름도’. 역사 교과서마다 등장하는 이 그림은 강무가 씨름판에서 상대를 넘어뜨리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고 설정된다. 풍속화를 그리려 찾아간 씨름판에서 윤복과 홍도. 강무 사이에 미묘한 삼각관계의 감정이 깔린다.
‘동양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신윤복의 걸작 ‘미인도’는 이 그림이 신윤복의 자화상이었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신윤복이 연인 강무 앞에서 처음으로 여성성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나온다. 그림 때문에 남자로 살다가 사랑 앞에서 여자이고 싶었던 그녀의 설렘은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춰 보는 모습에서 묘사된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긴다.
신윤복의 ‘춘화를 보는 여인’은 극중에서 비극을 부르는 소도구로 활용된다. 윤복과 강무는 타락한 양반가 며느리들에게 사향을 팔러간다. 여인네들은 은밀히 춘화를 보며 음담을 즐긴다. 그런 모습을 윤복은 화폭에 담는다. 그때 풍기단속을 하는 관군들이 밀어닥치고 두 사람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간다.
신윤복의 ‘이부탐춘’. 어느 눈부신 봄날 동네 개들이 교접하는 광경을 청상과부가 배시시 웃으면서 지켜보는 그림이다. 인간 본연의 감정에 눈뜨게 된 남장여자 윤복은 이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가 저속하고 음탕한 그림을 그렸다는 죄목으로 도화서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대형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신윤복과 김홍도의 풍속화는 이 영화를 감상하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풍속화들이 영화적인 소도구나 소품에 머무르지 않고 사건 전개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이야기는 탄력을 받는다. 웰메이드 사극다운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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