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은 영화 개봉 전의 인터뷰들에서 연기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했다.
나도 한 때 영화배우가 꿈이었다는 강패와 4년여의 공백기를 가진 자신이 닮았다고 했다.
최근 드라마를 통해 승승장구하던 강지환의 장편영화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는 영화다'는
그러나, 소지섭이 말한 그 묵혀둔 진한 '갈망'이, 잘나가는 강지환의 스크린에의 야망보다 조금 더 강했나 보다. 누가 더 연기를 잘하고 못했는가의 얘기가 아니다. 다만 간절함의 차이일 뿐, 강지환도 4년쯤 연기를 굶고 나온다면 또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10대의 소년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20대의 청년에게 길은 너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일찌기 주저없이 선택하여 자신의 길을 가는 현명한 이는 드물다.
누군가의 꽁무니를 뒤쫓거나 갈길몰라 주저앉거나 우왕좌왕 헤매다 보면 어느새 '서러운' 서른이 되어있다.
얼떨결에 의류모델에 덜컥 붙어버려 수영선수의 꿈을 접고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소지섭에게 연기가 자신의 '갈망'이 되기까지는 어떤 숙성과정이 있었을까
가늘지만 묵묵히 이어져 오던 길의 이십대의 끝물에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연기 좀 한다는 소리도 듣고 인기 좀 있다는 걸 느낄 찰나,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멈추어 서야 했다.
자신을 돌아보며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하고 싶은 것들을 누르며 숨죽여 있던...그 시간들의 내적 응축과 발효과정을 거쳐
서른을 넘긴 사내 앞에 그제서야 더욱 더 또렷해진 '갈망'...
그것의 정체는 바로 '연기'였던 것이다.
어쩌면 강패처럼, 영화배우가 꿈으로만 남아버린 소지섭을 상상할 수 있을까?
누군들 한 번 사는 인생, 쓰레기 소리 들으며 살 수있나, 흉내만 내고 살 수 있나,
허나 겁내고 시늉하는 일이 다인 인생, 너나 나나 다를 게 뭐가 있나,
꿈은 꿈일뿐,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관을 빠져나오듯 현실로 돌아간,
피칠갑한 얼굴로 웃는 강패의 허연 이빨 틈새로 삐져나오는 소름끼침,
소지섭이 아닌 강패로, 스크린을 가득메운 그 눈, 눈빛에 정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소지섭이 좋다.
단지 영화를 '보는','감상하는' 일이 전부인 나와 다른,
'연기하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은' 소지섭으로 돌아와 주어 고맙다. 그리고,
그의 농밀해지고 다듬어진 '갈망'의 결실 앞에 시뻘건 별 다섯개를 던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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