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허접한 삶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할 수 있다...★★★★
<인 블룸>의 바딤 페렐만 감독이 차기작으로 리메이크하기로 한 영화 <파이란>. 드라마에 집중하는 바딤 페렐만 감독이 <파이란>을 리메이크하기로 결심한 것에는 <파이란>이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공통의 정서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일본을 대신해 아시아 저개발국가 민중의 꿈(돈)을 이룰 수 있는 대상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대단히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면 그 국가가 잘산다는 것만으로는 그러한 위치의 국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공통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이민자에 대한 시각이며,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다.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매번 작품의 완성도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 같다. <카라> → <파이란> → <역도산>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진행되어 온 송해성 감독의 연출 이력은 혹평과 호평의 양극단에 서 있고, 나는 묘하게도 호평의 대상이 된 영화만 관람한 셈이 되었다. 이런 싸이클로 보면 차기작인 <멜로스>는 왠지 모르게 제목부터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낳을 것 같지 않다는 재밌는 관측을 하게 된다.
어쨌거나 깡패영화와 멜로영화를 조합한 영화는 많지만 <파이란>은 두 가지 영화 장르의 속성을 살짝 비켜서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독특한 느낌이다. 우선 주인공 강재(최민식)는 동네 삼류 건달로 친구가 두목임에도 불구하고 후배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전형적인 찌질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다른 영화처럼 강재가 어떤 기회에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사실 그는 그저 조그만 비디오방이나 운영하며 먹고 살길 바랄 뿐이지만, 팍팍한 조직 움직임은 그런 작은 바람조차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한 여성의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사랑한다’는 고백은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잊고 지내던 깨달음을 얻게 한다.
멜로영화로서의 <파이란>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남녀가 한 번도 같이 나오지 않는다. 같이 나오긴 하지만 마주 보지는 않는다. 둘은 내내 일방적이다. 강재가 바라볼 때 파이란(장백지)은 고개 숙이고 있었고, 파이란이 강재를 찾아왔을 때, 강재는 유리창 너머에 앉아 있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그런 그들은 파이란이 죽은 다음에야 마주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파이란>에서의 최민식 연기는 단연코 2001년 최고라고 평가할만했다. 특히 삼류깡패 강재가 부둣가에서 파이란의 사진을 꺼내보며 울먹이는 장면은 잊기 힘들 정도로 아련하다. 최민식만이 아니라 어눌한 한국말로 현실감을 더한 장백지, 단호함과 비열함의 양극단을 수시로 오가는 손병호, 코믹한 듯 하지만 말단 깡패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 공형진까지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7년 전 파이란을 죽인 우리 사회가 7년이 지난 현재 얼마나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나를 생각해보면 강재의 울음이 가져오는 암담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