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록 밴드 1세대에 보내는 헌사... ★★★☆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에서 음악 또는 밴드, 그 자체가 주인공이었던 영화가 있었던가? 많은 음악 영화들이 존재했지만, 그건 엄밀하게 말해 음악 영화가 아니라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 내지는 음악이 좋은 영화였다. 그 동안 <도어즈>나 최근 <샤인 어 라이트>를 보며 왜 한국에는 이런 음악 영화가 없는가라고 한탄했다면 이제 우리에겐 최소한 <고고 70>이라는 영화가 존재함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고 70>은 밴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거나 뚜렷한 영화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해주긴 힘들다. 밴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의 전형이란 무엇일까? 오합지졸들이 모여 밴드를 결성한다. 그 밴드의 음악은 너무 서툴거나 또는 너무 앞서 있거나 또는 너무 독특해서 대중에게 수용되지 못하고 배척 받는다. 밴드의 노력과 우연한 기회 등이 엮어서 잘 나가는 밴드가 된다. 성공으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가 밴드에 드리워진다. 음주 가무, 향락. 밴드의 불화가 깊어지고 파국을 맞이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감동적인 피날레를 장식한다. <고고 70>이 가는 길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처음엔 차갑게 대하던 기술자가 밴드의 음악적 열정에 웃음을 띠는 스튜디오 녹음 장면은 정확히 <원스>의 그것과 동일하다.
많은 음악 영화들의 전형성을 그대로 반복한다는 건 <고고 70>이 대단한 영화적 성취를 이루고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고고 70>은 장르의 전형성이 줄 수 있는 안정적, 대중적이라는 장점을 토대로 해서 한국에서는 처음인 지점에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꿈이 작은 영화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꿈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평가해 줄 만하다.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건, 우선 조승우를 필두로 한 배우들의 연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영화와 뮤지컬을 오가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승우가 있기에 <고고 70>은 기획되고 제작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후아유>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이 있어서 당연하게 기타를 연주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당시 장면은 그냥 폼만 잡은 것이란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기타를 배워, 영화에 나온 모든 곡을 실제 라이브로 연주했다고 하니 어쨌거나 그의 노력에 박수. 조승우와 밴드 내에서 나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리드 기타를 맡은 차승우는 과거 <노브레인>의 멤버였으며 현재 그룹 <문샤이너>에서 활동하고 있고, 드러머 역의 손경호도 <문샤이너>의 드러머라고 한다. 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의 원천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최호 감독의 욕심은 클럽의 관객들을 일반 보조 연기자(엑스트라)로 채우지 않은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호 감독은 관객의 반응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 뮤지컬 배우와 연극배우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해 공연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객의 반응도 실제 공연장에서의 관객인 냥 활기차고 흥에 넘친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 중에서 이번 영화의 최대 포인트는 신민아라고 생각한다. 조승우 같은 경우는 역 자체가 조승우에 맞춰진 역이고 해서 잘한다고 크게 빛내기 힘든 상황이라면 신민아는 그 동안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장 빛나는 역을 소화해내고 있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었던 영화 중반부에 화려하게 등장해 활력을 불어 넣은 건 뭐니 뭐니 해도 신민아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반적인 스토리가 밴드 영화의 전형성을 따라한다고 해서 모든 밴드 영화가 동일해지는 건 아니다. 특정한 밴드 영화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그 밴드가 활동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과 그 밴드의 음악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데블스>가 활동했던 70년대 초반에서 중후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 중 하나일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철저하게 부정되었으며, 심지어 머리 길이와 치마 길이도 정권이 정해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야 했다. 통기타조차 반항의 상징이라며 압수당해야 했고, 젊음의 밤은 통째로 사라져야 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그려지는 당시 시대의 풍경은 마냥 암울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그게 전반적인 화면의 톤이 백열등에서 느껴지는 은은함으로 채색되어서인지, 아니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암울한 시대의 공기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혔던 신나는 음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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