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시스템이다.... ★★★★
켄 로치 감독 이름 앞에는 좌파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그런데 그의 영화를 보면 그가 사회의 모순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은 생각보다 적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그저 민중의 삶을 관조적으로 그릴 뿐이다. 이런 점에서 <랜드 앤 프리덤>, <빵과 장미>, <자유로운 세계>는 그의 작품 이력에서 조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세계>는 불법/합법 이민자의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빵과 장미>의 논리적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빵과 장미>가 멕시코 이주 노동자의 시각에서 미국 노동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 <자유로운 세계>는 인력알선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새끼 자본가를 중심에 놓고 얘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두 영화는 마치 거울에 비친 쌍둥이 영화 같기도 하다.
싱글맘 앤지(키어스톤 워레잉)는 동구권 이민자들을 영국으로 취업시키는 인력송출업체의 직원이었지만, 상관의 성추행에 항의하다 해고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떠안고 있는 그녀는 생계를 고민하다 스스로 인력송출업체를 꾸리기로 결심하고 친구인 로즈(줄리엣 엘리스)와 함께 동업을 시작한다. 그녀는 타고난 붙임성에 미모까지 무기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영업을 벌이고, 차츰 시장에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인력을 보낸 건설현장이 일방적으로 문을 닫자 노동자들은 그녀에게 격렬히 항의하고 앤지는 갈등하게 된다.
<자유로운 세계>를 보다보면 이 사회가 헤어나기 힘든 수렁 속에 잠겨 있다는 생각에 암울해진다. 그건 노동자 입장에서도 그렇고, 아직은 미숙한 자본가였던 앤지 입장에서도 그렇다. 영화 속 노동자들은 불법/합법 이주 노동자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주로는 동구권에서 수혈된 이들은 영국 자본주의 착취 체계의 가장 하단부를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기륭전자 노동자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존재는 소위 ‘유연한 노동시장’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한다.
이들을 취업 일선으로 안내하는 앤지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앤지는 노동자 출신이면서 마음씨 좋은 자본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 시절 그녀는 성희롱의 피해자였으며, 자본가가 되어서도 집과 일자리가 없는 이란의 불법 이민자 가족을 위해 식사와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일자리를 제공한다. 나는 이 부분이 바로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 시절 성희롱의 피해자였던 앤지는 자본가가 되어선 자신이 일자리를 주어야 살아갈 수 있는 남성 노동자들을 스스럼없이 밤에 불러내 성욕 해결의 도구로 활용한다.(실제 남성도 즐겼다는 것은 이 문제와 하등 관련이 없다. 쉽게 밤에 불러낼 수 있는 위치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익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불법 이민자의 숙소를 당국에 고발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불법 이민 노동자를 위해(!)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서 그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준다는 일종의 은전 의식을 숨기지 않는다. 앤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들에게 최저 임금은 주고 있니?”
참 쉽지 않은 문제다. 앤지는 심정적으로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으로 그들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앤지는 점점 냉혹한 자본가가 되어 간다. 마지막 장면은 그 전 장면에서 훌쩍 뛰어 넘은 것이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추론으로나 가능하지만, 떠났던 로즈가 돌아와 있고, 앤지는 사업 영역을 넓혀 직접 동구권으로 가서 필요한 인력을 송출한다. 앤지는 이젠 미숙한 자본가가 아니라 성숙한 자본가이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동구권 노동자들을 상대한다. 그런 앤지를 보며 동구권 노동자는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그는 이제 곧 최첨단의 유연한 노동 시스템=착취 시스템에 편입될 예정이다. 그들이 희망하는 자유로운 세계는 자본가 입장에선 착취할 자유가 보장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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