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근거는 희박하지만 볼거리는 충분... ★★★☆
인류의 멸종을 실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꼽히는 게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 아마도 영화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으로 인해 혜성과의 충돌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 많이 알려져 있는 건 <아웃 브레이크>에서 비극의 단초를 보여준 바 있는 바이러스 감염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혜성과의 충돌이라든가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한다. 그것도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을 확률보다는 높게. ㅎㄷㄷ.
<아마겟돈>이 흥행으로는 성공했지만 과학자들의 평가로는 설정이 완전 엉터리고 <딥 임팩트>가 과학적으로 보면 그나마 잘 만든 영화라고 한다. 일례로 혜성과의 충돌을 불과 18일 정도 남은 상황에서 파악한 <아마겟돈>과는 달리 실제로는 적어도 몇 년 전에는 관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핵폭탄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건 확실한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 무리라고 한다. 왜냐면 핵폭탄으로 혜성을 폭파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실제로 폭파시킨다 해도 혜성의 파편이 어떤 경로를 가지게 될지 관측하기 어려워 더 큰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단다. 과학자들은 핵보다는 강력한 레이저 빔에 의해 혜성의 중앙에 구멍을 내어 혜성 핵의 분출에 따른 궤도 조정을 꾀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고려중이라고 하는데, 거리가 멀수록 조금의 궤도 수정으로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 혜성과의 충돌이라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얼마나 빨리 충돌을 알아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바이러스 창궐은 어떨까? 잠복기가 길고, 발병하면 치명적이며, 공기로도 감염이 쉽게 되고, 빠르게 변종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가진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인류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이란다.
그렇다면 <코어>에서 인류 멸망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지구 핵의 정지에 따른 자기장의 소멸은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일까? 일단 지구의 자기장이 외계에서 날아오는 양자탄을 막아주는 기능을 하는 건 맞는다고 한다. 그러니깐 지구를 감싸고 있는 자기장이 없어지면 영화에서 보여주듯 불길에 노출된 사과 신세가 될 거란 얘기다. 그런데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아직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일부 과학자들이 내핵의 회전이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원인이라는 주장을 내세웠긴 하지만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며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의견 또한 상당하다고 한다. 게다가 인류가 현재까지 지구 중심으로 들어간 기록을 보면 과연 내핵에 접근조차 할 수 있을지, 그 뜨거운 내열을 감당할만한 장치가 있는 지 아득해질 뿐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영화에선 대체로 숨어 있는 재야 학자들에 의해 상당한 준비가 되어 있다. 일종의 클리셰.
과학적 근거 여하를 떠나 <코어>는 그 상상력과 볼거리는 꽤 괜찮은 수준의 영화인 건 확실하다. 지구 내핵의 회전이 멈추면서 심장 박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쓰러진다거나 자기장의 안내를 받아 하늘을 나는 철새들이 방향을 잃고 영화 <새>에서처럼 의도적이진 않지만 인간을 공격한다거나 하늘에서의 거대한 정전기가 이탈리아 콜로세움을 박살내는 장면은 지금 기준에서 보면 조금은 어설프긴 해도 여전히 볼만한 건 사실이다.
물론, 인공지진을 일으키는 무기를 개발해 지구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이 몰래 숨어서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은 마치 병 주고 약주는 것 같아 씁쓸한 것도 사실이지만, 탐험 도중 적절한 타이밍에 한 명씩 영웅들이 장엄한 죽음을 맞이해 주시는 등 끝까지 적당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락영화로서의 장점은 충분하다. 그런데 핵무기 말고는 인류를 위기에서 구할 장비는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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