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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지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 영화는 영화다
ldk209 2008-09-11 오전 11:22:53 14117   [25]

허물어지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

 

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처음 소지섭, 강지환 주연의 <영화는 영화다>라는 묘한 제목의 영화가 제작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영화를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왜냐면 드라마라면 몰라도 내 돈 내고 내 시간 들여서 배우라기보다는 모델에 가까운 연예인이 출연하는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작사가 김기덕 필름과 스폰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관심이 동했더랬다. <영화는 영화다>의 제작비가 15억이라고 하는데, 15억 이면 한국 영화로서는 약간 저예산 쪽에 가깝지만 제작사 입장에서 보면 이건 거의 블록버스터급이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는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담당하고 김기덕 사단 출신인 장훈 감독이 연출을 맡은 만큼 영화에서 김기덕의 느낌을 찾기란 어렵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실제와 허구의 혼동을 그린다는 점에서 보면 김기덕 감독의 초기작품인 <실제상황>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매력은 우선 직접적이고 직선적이며 일차원적이라는 점에 있다. 이건 출연 배우들의 영화 속 이름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강지환이 맡은 스타 배우의 이름은 ‘수타’이고 소지섭이 맡은 깡패의 이름은 ‘강패’다. 이만큼 단순한 닉네임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이야기도 직선적이다. 실제와 허구 사이를 숨 가쁘게 교차하며 내달린다. 그러면서 그 경계를 서서히 허물어간다.

 

<영화는 영화다>의 캐스팅이 절묘하다고 느낀 건 강지환, 소지섭이라는 두 배우가 이전에 출연한 드라마의 캐릭터 자체가 대체로 단순하고 직선적 이미지가 강한 배역이었다는 점이다. 즉, 두 주인공의 기존 출연 드라마의 이미지와 이번 영화 속 실제 이미지, 그리고 영화 속 영화의 허구 이미지가 동일하게 겹치며 묘한 기시감을 드러냄으로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실제와 허구의 혼동, 교차, 겹침은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일종의 성장영화다. 자신 밖에 모르는 ‘수타’와 ‘강패’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공고하게 보였던 주변이 허물어짐을 경험한다. 둘 모두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는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수타는 밝은 카페에서 공개 데이트를 시작하고, 강패는 여인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영역에 대한 선망을 드러낸다. 수타는 현실에서의 강패 말투를 영화에서 구현하려 하고 강패는 영화에서의 수타 말투를 현실에서 구현하려 한다. 둘은 그렇게 서로 닮아간다. 영화에서 주로 검은색 슈트를 입은 소지섭(어둠)과 다양하긴 하지만 하얀색 슈트를 입었던 강지환(밝음)은 뻘밭에서 뒹굴며 어쩌면 자신을 향해 주먹질을 해댄다. 대체 누가 누구를 때리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뻘밭에서의 결투는 둘이 완전히 동일하게 되었음을, 즉 허구와 현실이 겹쳐졌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는 종종 씬과 씬의 연결에서 매우 거칠다는 느낌을 준다. 이건 연출의 의도가 아니라 기술과 관련된 얘기다. 예를 들면, 거울을 등지고 소지섭과 홍수현이 안은 채 대화를 한다. ‘너를 만나면서부터 내가 변하는 거 같아’ ‘어떻게 변했는데?’ - 대충 이런 식의 대화 끝에 영화는 갑자기 다음 씬으로 뚝 끊고 넘어간다. 분명 소지섭의 얼굴 표정을 비추며 뭔가 여운을 줄만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여타 많은 부분에서 왜 넣었는지 모호한 장면도 있었고 반박자 빠르게 또는 반박자 늦게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예산에 따른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타와 강패, 둘의 상대방에 대한 선망 또는 상대방 영역에 대한 선망은 현실에서 어떻게 반영될까? 어떤 부분에서는 둘의 성장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둘 모두에게 가혹한 시련과 비극을 안겨다 준다. 영화는 현실과 달라 맞으면 아픈 것이다. 자신의 부하에게 두들겨 맞는 수타를 보며 강패는 한마디 던진다. ‘영화는 현실과 달라’. 그리고 현실은 영화처럼 멋있지 않다. 현실은 비루하고 비참하다. 수타의 말을 흉내 내어 멋있게 배반자를 살려준 강패는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른다. 역시 영화는 영화인 것이다.

 

※ <추격자>를 넘어서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연출에서 거칠긴 하지만 분명 장훈 감독은 나홍진 감독과 함께 2008년에 등장한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임에 분명하다.

 

※ 고창석이라는 배우에 대해 기억나는 건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에게 총을 만들어 주는 남자와 <바르게 살자>에서 정재영에게 인질로 잡혀 죽는 경찰 역할로 나왔을 때다. 그 외에도 <야수> <예의 없는 것들> 등에 출연했다고 하는데, 언뜻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영화는 영화다>에서 확실하게 자기 존재감을 심어줬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나오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웃음이 터진다.

 

※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은 나름 예상을 하긴 했다. 왜냐면 처음에도 말했지만, 영화를 보기 전부터 김기덕 감독의 <실제상황>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주 독창적인 엔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는 맞춤옷처럼 좋은 엔딩인 것도 사실이다.

 

※ 영화가 끝나고 엔딩 타이틀이 다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영화를 끝내 버린다. 모든 관객이 나가도 웬만하면 혼자서라도 남아 자리는 지키는데, 갑자기 끊어버리니 좀 황당했다. 알고 보니, 감독, 배우 인사가 있다고. 조금 있다가 장훈 감독, 소지섭, 홍수현, 고창석. 이렇게 네 명이 인사를 하러 올라왔다. 어쩐지 일본 여성들이 꽤 많이 있어서 그저 ‘소지섭 인기가 일본에서 꽤 있긴 한가보다’ 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직접 무대 인사하는 걸 보기 위해서 모였던 거다.


(총 1명 참여)
wjswoghd
약간 맛이 간 영화   
2008-09-17 17:51
gusska97
좋아 좋아   
2008-09-15 12:14
1


영화는 영화다(2008)
제작사 : 김기덕 필름, 스폰지 / 배급사 : 스폰지, 스튜디오 2.0
공식홈페이지 : http://www.00mov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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