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코믹스의 인기만화 [배트맨]이 영화화 된것은 1989년 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배트맨 시리즈를 말할땐 대부분 1989년 팀버튼 감독의 <배트맨>부터다. 그만큼 팀버튼 감독의 배트맨은 완성도가 높았고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뒤로 팀버튼은 <배트맨 리턴즈>까지 연출 하고 그 뒤를 이어 조엘 슈마허 감독이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과 로빈>을 연출한다.
사실 <배트맨>과 <배트맨 리턴즈>까지는 팀버튼 감독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며 만화가 원작임을 살려서 암울한 만화같은 분위기의 연출로 호평을 받았으나,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을 한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과 로빈>은 혹평을 받는다. 이전 시리즈가 만화적이며 암울한 분위기였다면, 이후 시리즈는 거의 판타지였다. 도시의 암울함은 있었으나 배트맨의 암울함은 없었다. 그리고 영화 특유의 섹시함도 사라졌다.
1997년 이후 끊어졌던 시리즈가 2005년 다시 이어졌다.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 의외였다. <메멘토>를 감독하며 천재감독으로 불렸던 그가 배트맨 시리즈를 이어가다니. 사실 스릴러에 능통한 감독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배트맨 비긴즈>연출은 의외로 여겨졌다. 그리고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에 이은 4대 배트맨은 크리스챤 베일로 낙점됐다. 이전의 배트맨이 다부진 체격이었던데 비해 호리호리한 체형의 배트맨이 되었다. 왠지 배트맨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보였다. 배트맨 시리즈의 프리퀄적인 내용인 <배트맨 비긴즈>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는 과정과 팀버튼의 <배트맨>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떻게 보면 팀버튼이 시작했다고 여겨지는 배트맨 시리즈를 이어가는 한편의 배트맨 시리즈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배트맨 비긴즈>는 또 다른 '배트맨' 영화였다. <배트맨> 부터 <배트맨과 로빈>까지가 하나의 줄기로 이어져온 시리즈라면 <배트맨 비긴즈>는 다른 줄기의 영화인 것이다.
그간의 배트맨 영화들이 만화적이고 동화적이고 판타지적이었다면 <배트맨 비긴즈>는 현실적이고 인간적이었다. 수많은 영웅 영화에서 보여준 초인도 아니고, 기계인간도 아니고, 돌연변이도 아니고, 외계인도 아닌 그냥 돈많은 부자이며 어릴적 갱에 의해 부모를 잃은 인간 브루스 웨인이다. 다른 사람과 달랐던건 돈이 많다는 것 뿐. 복수심에 무술을 배우고 수련을 해서 그는 배트맨이 된다. 물론 그 많은 돈으로 만든 장비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연출된 <배트맨 비긴즈>는 큰 호평을 받고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말도 듣게 된다. 그러면서 영화내에서 의미심장하게 예고된 '조커'의 등장. 바로 <배트맨 비긴즈>의 속편격인 <다크 나이트>의 예고였다.
개봉전 <다크 나이트>에서 악당 '조커'역을 맡았던 히스 레저가 사망 하면서 <다크 나이트>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그리고 속속들이 들려오는 정보에서 히스 레저의 '조커'는 소름이 끼친다는 말이 들렸고, 그 소문은 미국에서 개봉하면서 그 소문이 사실로 퍼졌다.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호평이 쏟아져 나왔고, 국내엔 개봉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히스 레저의 아카데미 수상 예상까지 떠돌았다.
『 무법의 도시 '고담시'의 밤을 지키는 배트맨(크리스토퍼 놀란). 그리고 미치광이 살인광대 '조커'(히스 레저). 고담시의 영웅 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 조커는 고담시의 갱들에게 배트맨을 죽이자고 제안한다. 고담시의 몰락과 배트맨의 죽음을 바라는 조커의 행각은 고담시를 혼란에 빠트리게된다. 배트맨은 사람들이 자신을 무법자라 부르는 것에 고뇌한다. 그런 배트맨은 법으로 악당들을 잡아 넣는 스타 검사 하비 덴트가 고담시의 진정한 영웅으로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도 조커는 점점 배트맨의 목을 조여오는데...』
줄거리를 보면 <다크 나이트>가 이전의 배트맨 시리즈와는 다른 노선을 타는 것을 알 수 있다. 팀버튼의 <배트맨>에서 악당은 조커 한명뿐이다. 투페이스는 조엘 슈마허가 연출한 <배트맨 포에버>에 등장한다. 없던 악당이 나온 건 아니지만 두 악당의 출현 시점을 봤을때 이전의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위에 말했듯이 이전의 배트맨 영화와는 다른 줄기를 타는 영화라고 했던 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관객의 평이 둘로 나뉠만한 내용이다. 그간 때리고, 부수고,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고, CG범벅이 된 영웅물에 빠져든 관객이라면 <다크 나이트>는 정말 심심하고 지루한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다크 나이트>에 때리고, 부수고하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 카 체이싱도 있고, 건물도 폭파하고 스케일 큰 액션신도 있다. 다만 그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영웅물에 비해 볼거리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느끼고 감탄할 부분은 많다. 그 부분은 밑에 천천히 알려드리겠다.
<다크 나이트>엔 배트맨의 섹시함은 없다. 이미 <배트맨 비긴즈>부터 없었다. 내가 <배트맨 비긴즈>에서 아쉬웠던 것은 그 부분이었다. 배트맨의 섹시함 그리고 고담시의 암울함이 많이 배제가 된 연출이었다. 개인적으로 팀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둘다 정말 너무나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두 감독의 스타일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고통점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니 사실 이전의 분위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배트맨도 있으면 저런 배트맨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본다면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 게다가 왠지 섹시해 보이는 크리스챤 베일이 아닌가. 그를 <이퀼리브리엄>에서 인상깊게 보고 그뒤로 쭉 봐왔는데 이런 영웅물에도 어울리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 것이 그는 현재 제작중인 <터미네이터 4>에서 인간의 영웅인 존 코너역을 맡았다.
사실 <다크 나이트>에서의 진정한 주인공은 단연 '조커'라고 말하고 싶다. 엄청난 포스를 내뿜으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서 나오는 그 느낌이란... 화장빨(?)도 있겠지만 목소리 톤이나 표정, 그리고 행동에의한 분위기는 섬찟하기에 충분하다. 팀버튼의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의 '조커'와는 또 다르다. 분명 잭 니콜슨의 '조커'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역시 조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배역이 아니라는 것을 히스 레저가 입증시켰다. 캐릭터 자체에서 내뿜는 포스가 강력해서 자칫 잘못하면 욕먹기 쉽상인 역을 히스 레저는 완벽히 해냈다. 정말 완벽한 조커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대사 중간중간 '쩝쩝'하는 소리를 내는 것과 갱들 모임에 나타나면서 낸 웃음 소리는 정말 얼굴을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섬찟하다.
하비 덴트역의 아론 에크하트는 <다크 나이트>의 주연 중 한명이지만 그리 큰 카리스마는 보여주지 못한다. 사실 두 주연 배트맨의 크리스챤 베일과 조커의 히스 레저 사이에 껴서 빛이 바랬다. 하비 덴트는 <배트맨 포에버>를 보면 알겠지만 그가 바로 '투페이스'다. 하지만 <배트맨 포에버>에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했던 '투페이스'와는 다르다. 같은 캐릭터지만 이름만 같을 뿐 모든 것이 다르다.
<다크 나이트>는 다른 영웅물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지금까지의 헐리웃 영웅물과는 다르다. 영웅 접대가 영~ 아니다. 가뜩이나 암울한데 더 암울해진다. 이부분은 스포일이 될 수가 있으니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겠다. 단, 분명 타 영웅물과는 다른 전개지만 놀란 감독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이런 전개가 그의 스타일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 재미 위주의 영웅물이 아니라 다소 휴머니즘 적이며 드라마틱한 영웅물이다. 영웅물의 이런 현상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도 보였었는데 그리 심도있게는 그리지 못했었으나, 놀란 감독의 손을 거친 <다크 나이트>는 이부분을 참 심각하게도 그려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아무리 볼거리 보다는 내용 위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배트맨의 상징들을 빼놓지 않았다. 액션적인 볼거리와 장비적 볼거리. 특히나 이전의 배트맨 시리즈도 그렇고 지금 놀란 감독의 시리즈도 그렇고 배트맨 영화는 매번 장비가 관심사 중 하나였다. 특히나 이동수단이 주목을 받는데 <배트맨>부터 <배트맨과 로빈>까지는 배트모빌, 배트윙 등이 있었고,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배트텀블러가 등장했다. 이전의 날렵하고 스타일리쉬한 배트모빌을 대신한 배트텀블러는 거의 생김새는 장갑차에 가까웠고 투박했다. 하지만 성능은 이전의 배트모빌을 능가한다. <다크 나이트>에서도 역시나 배트텀블러가 등장하며, 추가로 오토바이인 배트포드가 등장한다. 그밖에 표창 등의 기본 무기는 말할 것도 없다. 다음으로 액션의 볼거리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짧고 굵다. 특히나 도로 카 체이싱 장면은 <다크 나이트> 액션씬 중 압권이라고 본다. 그밖에 거대 폭발씬도 있고, 가벼운 투닥거리도 있고 뭐 그렇다.
수많은 영웅들 중에서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쌍벽을 이루는 갑부 '브루스 웨인'. 그는 낮엔 억만장자이지만 밤엔 배트맨으로 변한다. 그는 금전적으로는 모자랄게 없는 부자이지만 단지 정의를 위해 밤마다 악당을 소탕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의 마음을 몰라준다. 오히려 배트맨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고 아우성이다. 그런 반응에 배트맨(또는 브루스 웨인)은 고뇌에 빠진다. 그때 등장한 스타 검사 하비 덴트. 그리고 그의 연인 레이첼 도슨. 배트맨(또는 브루스 웨인)은 고담시의 정의를 지킬 영웅은 하비 덴트라고 말한다. 레이첼 때문인지 아니면 무력만으로 악을 제압하려는 자신에게 한계를 느껴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 브루스 웨인(또는 배트맨)의 심경에 변화가 있는것은 분명하다. 바로 그 변화를 준 장본인이 조커다. 돈이 아닌 순수한 혼돈을 원하는 조커. 그래서 그에겐 미끼가 존재하지 않다. 그를 잡을 방법은 직접 대적하는 것뿐. 배트맨이 얼굴을 공개하기까지 도시를 혼란에 빠트리겠다는 조커. 이 조커와 배트맨과의 대결에서 이 영화는 더 이상 영웅물이 아닌게 된다. 배트맨은 조커에게서 어떠한 약점도 발견하지 못하지만 조커는 배트맨의 속을 이미다 간파하고 있는 듯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결국 내가 계속 이 영화를 영웅물이라고 이야기 해놓고 끝내는 영웅물이 아니다라고 말해버렸다. '배트맨'이라는 인물은 분명 고담시의 영웅이다. 고담시민이 보는 배트맨은 영웅이 아닐지 몰라도, 속사정 다아는 관객은 배트맨을 고담시의 영웅으로 볼것이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나, 악당 조커에게 휘둘리면서 고뇌하는 그는 영락없는 마음약한 사람이다. 초현실적 기운을 가진 그런 영웅이 아니라 고뇌하고, 힘들어하고, 장비 없이는 악당들하고 싸울 수 없는 그런 약한 사람인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2005년에 8년간이나 잠잠했던 배트맨을 다시 불러와서는 고담시에서 잘나가던 배트맨을 왜 이런 약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을까. 분명 의도된 시도였을 것이다. 영웅이지만 그도 마스크를 벗으면 평범한 인간이기에, 정의의 사도로 용감해 보이지만 그에게도 여린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기에 그는 분명 다른 영웅물과는 다른 차별적인 내용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을 이처럼 그렸다고 본다.
짱짱한 조연들은 영화에서 중요 요직을 도맡으며 영화를 빛낸다. 짐 고든역의 게리 올드만. 예전에 <제5원소>를 보면서 느낀 그의 괴상한 이미지가 도저히 깨지지 않았었는데 <다크 나이트>에서의 그의 중후한 모습은 그 이미지를 깨기에 충분했다. 사실 <해리포터>시리즈에서 '시리우스 블랙'으로 연기할때도 그의 이미지는 좀 처럼 깨지지 않았으나 이번엔 확실히 깨졌다. 연기변신은 아니지만 새롭게 보였다. 그리고 배트맨 장비들의 기술고문 루시우스 폭스역의 언제나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건 프리먼. 최근들어 다작하시는 경향이 있는 듯 한데 자주봐도 불편하지 않은 편한 인상에 믿음직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배트맨의 최측근이자 조언자 및 조력자, 그리고 집사 알프레드역의 마이클 케인.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좀 있다. 우선 여자배우가 조금더 이쁘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레이첼을 볼때마다 생각했다. 조금 재미있는 것이. 레이첼역의 매기 질렌할은 사실 제이크 질렌할의 누나다. 제이크 질렌할은 바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히스 레저와 그렇고 그런사이를 연기한 배우다. 히스 레저는 두 남매 모두와 연기를 한셈이 된다. 쓰다 보니 별로 재밌지는 않다. <배트맨 비긴즈>의 레이첼역이었던 케이티 홈즈는 이뻤는데...
두번째 아쉬운 부분은 액션씬의 부족이다. 사실 배트맨 내면의 고뇌를 중점적으로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부실해 질 수 밖에 없긴하다. 그간의 배트맨 영화들을 보면서 좀 더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을 관객들에겐 약간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액션은 짧고 굵으니 위안 삼을만 하다.
마지막 아쉬운 부분은 결말이다. 속 시원한 결말이 아니다. 뭔가 뒤가 남게되는 그런 개운치 못한 감이있다. 왠지 다음편이 안나오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음편이 나올지 안나올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다음편이 제작되어서 이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지워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에서는 개봉 18일만에 수익 4억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는 이건 최단기간 4억달러 돌파 기록인 <슈렉2>의 기록을 무려 25일이나 앞당긴 기록이라고 한다. 현재 11년간 깨지지 않는 최고 수익 영화 <타이타닉>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과연 이 기운이 어디까지 갈지는 두고 볼일이다. 사실 광대한 스케일에 과격한 액션을 좋아하는 미국 영화시장에서 <다크 나이트>같은 암울한 영웅물이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것은 예상 밖이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만큼 폭발적일 줄은 몰랐다. 이는 분명 영웅물의 달라지고 있는 성향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다.
<다크 나이트>를 보실분은 상영관 선택시 화면의 크기나 화질 보다는 음향에 촛점을 맞추는것을 권장한다. 그 조커의 섬뜩한 목소리와 '쩝쩝'소리와 웃음소리는 반드시 분명하게 들어야하니 말이다. 영상은 디지털을 추천하지만 아쉽게도 <다크 나이트>는 디지털 버젼이 없다. 그러니 꼭 음향시설 좋은 상영관에서 보시길 바란다. 스크린은 그래도 크면 좋겠다.
사실 쓰고 싶은말이 더 많은데 스포일이 다량 함유될 것 같아 조금 줄였다. 그래도 꽤 길어졌다. 나머지 쓰고 싶은 내용은 다음편이 나온다면 그때 쓰도록하겠다. 이 이유때문이라도 반드시 다음편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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