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쉐퍼드
로버트 드니로의 두 번째 영화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누구나 다를 테지만 난 주로 감독이 누구인지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클레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번 검증된 감독이 다음 영화에서 졸작을 만들에 내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부담을 덜 받는 위치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경우 좀 더 진정성 있는 영화에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기 마련이고 시작이 결과를 맺기까지의 과정 또한 결과가 성취하는 찬란한 영광만큼이나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굿 쉐퍼드는 로버트 드니로의 두 번째 영화이다. 그의 긴 영화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그가 만들어 낼 영화에 대한 기대가 비록 이번이 그가 연출한 두 번째 작품이라 할지라도 나의 선택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의 영화는 작품속에서 감독의 할 수 있는 범위와 배우가 할 수 있는 범위의 경계선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비중이 상당하였으므로 어떤 대 감독의 작품보다 나의 시선을 끌 이유는 충분 했었다.
아쉬울 것 없는 대스타의 감독 데뷔는 그에게도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쉽지 않은 주제로의 접근을 통한 메시지의 전달은 그에게 필연적인 주제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는 다음 영화에서 그가 좀 더 힘을 빼고 작품을 할 수 있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충분이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냉전시대와 영화의 허상과 과욕
가끔은 미국과 소련의 힘의 균형이 지금까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몇몇은 지금보다 덜 민주적이고 개인의 자유가 제약당하는 시대를 회상 할 것이고 혹은 지구적 보완관의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작금의 미국을 떠올리며 소련이라는 거함의 침몰을 단맛이 조금 남은 껌만큼이나 아쉬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소위 어려운 영화로 느껴지는 것은 영화를 전부 이해하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시작되는 소련과 미국의 정치적 경쟁은 1962년에 이르러 쿠바사태 때 그 절정을 이룬다. 3차 세계 대전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결국 전쟁이 아닌 타협을 선택했지만 지금에 와서 그 시대를 평가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정치적 긴장이 각본에 의해 연출되고 결과 또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하나의 쇼였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D-13의 경우 이 기간을 철저하게 냉전의 플롯으로 장식하는 등 대부분의 헐리웃 영화는 지금까지 그 시대를 냉전의 긴장이 극대화 되었고 케네디의 선택과 결단이 빛나는 미국에 의해 세계의 평화가 보장된 시기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굿 쉐퍼드 또한 미·소 두 나라 정보국의 첨예한 대립과 두뇌싸움이 시종일관 계속되며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하지만 놀랄만한 점은 자유를 찾아 미국에 투항하는 소련 장교가 죽기 전에 미국의 정보원에게 하는 말이다.
"소련의 힘은 허상이야. 웃기는 쇼라구..녹에 페인트를 칠한 것 뿐이라구.. 하지만 당신들은 소련의 위상이 살아있어야만 되지.. 당신네 군산복합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련이 치명적인 위협이 되야 하니깐.. 소련은 위협이 아니야,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마치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군을 향해 내뱉는 반미론자들 혹은 반전운동가들처럼 이 소련 장교는 이것이 진실인양(영화속에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약물까지 투여) 말하고 자살을 한다. 사실 영화속에서 로버트 드니로는 가톨릭 신자로 나오고 유일신을 모시는 것을 나라와 국민에 봉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미안해 할 정도의 인물로 묘사되는 점을 미루어 보더라도 그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두 번째 작품이 갖는 문제의식에 얼마만큼 집착했는가를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감독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복선일지언정 영화자체로는 그가 영화 내내 담아내려고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가 이런 불편한 장면들을 걸러내고 좀 더 속도감을 내는데 주력했다면 베니스에서의 성공이 아카데미에서도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3시간의 런닝타임의 미덕
좋은 영화의 미덕은 잘 짜여진 플롯에 있다. 플롯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긴장감은 높아지고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3시간의 런닝타임은 감독의 불가피한 선택과도 같았다.
플롯의 완성도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인물묘사에 있다. 주인공의 어린시절과 대학시절, 한 순간과 같았던 로맨스와 선택과도 같았던 결혼, 독일에서의 전쟁과 전후상황, 미국에서의 방첩활동 등 이 영화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통해 온갖 장르 영화의 소스를 후회없이 분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굳게 다문 입술과 투박한 슈트로 대변되는 그의 성격은 잘 조성되어 있으며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한 쉴 새 없는 시·공간의 이동은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일수 있고 매끄러운 영화 진행을 위해 감독의 역량이 극대화 되어야 할 위험한 도박과도 같이 느껴진다.
이러한 인물묘사와 시·공간의 이동이 영화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들 수 있는 방법으로서 감독은 긴 런닝 타임을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쩌면 불가피 할 수밖에 없는 3시간의 러닝타임속에서 감독은 갖기 다른 이야기들을 어지럽게 배치하고도 결국에는 잘 조련된 쉐퍼드처럼 관객에게 믿음을 주는 힘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작품이 범작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이 영화가 조금은 난해하고 어지러운 장면이동의 필연적 단점을 가지고도 잘 짜여진 영화라고 할 수 있는것은 3시간의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한 감독의 노련함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되는..
아직 그를 클래스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크게 개운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대배우로서의 네임밸류가 주는 그만의 독특한 환경이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실 무척 좋아하는 배우이기에 오랜만에 뿌듯한 영화를 보고도 아쉬운 점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이기에 다음 영화는 배우로서의 역량만큼이나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빛낼 수 있는 작품이 나올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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