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원티드.'
참, 얄팍하기 그지 없는 영화 같더군요.
그치만 쓰레기라고 치부하기엔 그 상상력이 꽤나 대단했습니다.
그게 아무리 얄팍한 술수일지라도 말이죠.
그래도 실소 아니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는데,
일테면 총알에 스핀을 줘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게 만든다든가,
회복실 욕조에 누워 있으면 백혈구가 증가해서 상처가 금방 낫는다든가,
사람이 아닌 차가 덤블링을 할 때는 정말, 좀 기가찼죠.
어느 한 장면에선, 너무도 유명한, 그래서 너무나 진부한 영화장면의 패러디가 나올까봐
그래서 영화가 너무너무 유치하게 보일까봐 걱정하기도 했었답니다.
다행히도 살짝 비켜가더군요.
근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데요.
감독 자식! 우리를 조롱한 거였구나!! 라고.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제임스 맥어보이가 관객을 보고 물어요.
"What the Fxxx have u done lately?"
쟤 뭐래는 거니? 하면서 어이없게 쳐다 봤는데, 녀석 사뭇 진지하게 묻고 있더군요.
'졸라, 니네 요즘 뭐 하고 살았냐?'고.
너무 소심해서 'I'm sorry'라는 말 밖에 못 하는
평범, 아니 너~무 찌질한 샐러리맨 주인공.
그런데 영화가 전개되는 6주 동안 이 녀석, 별의 별일을 다 겪습니다.
쥐어 터지기도 하고 총도 맞고 칼도 맞고. 사람도 죽여보고.
근데 그러면서 '나는 누구?'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조금씩 풀어나가요.
물론 그게 온전히 자기 힘으로 된 건 아니었지만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면서 자기 함정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매달려요. 나란 인간은 누구냐는 질문에 말이죠.
마지막 장면.
수많은 고초를 이겨냈지만 녀석에게도 희망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직장 잃었죠, 돈 없죠, 애인도 잃었죠. 한 마디로 개털이 된 거죠.
그런 그가 묻는 거예요. "니네 요즘 뭐 했냐고" 말이죠.
관객을 우롱하는 그 당돌함에 한 번 웃고.
어이없어 하는 관객들 표정을 보며 또 한 번 웃고.
마지막 대사가 가슴 팍에 꽂혀 헛웃음을 한 번 더 웃었습니다.
감독은 왜 갑자기 진지한 척하며 그런 질문을 던질 걸까요.
소중한 시간에 영화관에 쳐박혀 오락영화나 보고 있는 관객들을 한 번 조롱해 보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영화 한 편을 끝냈다는 사실에 그만 '신이여 내가 진정 이 영화를 만들었나이까'식의 자뻑에 빠졌던 걸까요.
문득 '선택'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선택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죠. A를 선택하느냐 B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느냐.
A와 B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해 버리는 경우가 많죠.
시간이 휙휙, 귓볼을 스치며 흘러가버리는 걸 느끼면서도,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나는 아무 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하면서 살아가곤 하잖아요.
숨 쉬고, 밥 먹고, 잠 자고, 배설하면서.
나는 선택하지 않아서,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는 걸 깨닫고 말죠.
그래서 선택은, A와 B. 어느 쪽을 선택하든 선택하는 쪽이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쪽보다
훨씬 더 적은 기회비용을 치르게 되는 건가 봅니다.
'니네 요즘 뭐했어?'
초큼 재수없긴 하지만요, 그래도 귀엽더군요.
그말 하려고, 어? 그래서 일부러 더 영화를 얄팍하게 만들었던 게야? ㅋㅋㅋ
어쨋든, 그리 밉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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