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성공한 영화들의 새로운 경향 중에 하나는 미국 출신의 감독들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판의 미로]의 길예르모 델토로, [해리포터]의 알폰소 쿠아론, [본 얼티메이텀]의 폴 그린그래스, [브로크백 마운틴] 의 이안 감독등이 그 예 인데, 이번주 압도적인 예매율을 보이고 있는 영화 "WANTED" 또한 러시아의 흥행감독 "티무로 베크맘베토브" 가 메가폰을 잡아서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최근 신상녀들의 최신 훈남으로 떠오른 "제임스 맥어보이"와 지난 수년간 눈빛만으로도 지구상 남자들을 맹하게 만들어 놓는 "안젤리나 졸리"의 출연으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사회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리며 내뱉는 남성 관객들의 탄식(?)은 당연 안젤리나 졸리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녀가 'Wanted" 속에서 짬짬히 보여주는 매력적인 표정은 주인공인 제임스 맥어보이의 상큼한 몸짓을 훨씬 넘어서는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그녀가 나오는 영화중에 그렇지 않은 영화가 어디 있겠냐 만은)
하지만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러시아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보드카 향이다. 영화 중반까지 확연히 느껴지는 왠지 모를 사회주의적 붉은 기운은 방직 공장이라는 배경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신경쇠약 적인 몰골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몸은 고열로 뜨거운데 손은 점점 차가워지는 기분 나쁜 증상을 겪을 때 처럼 영화는 뜨거우면서 건조하다.
많은 사람들은 남들과 조금 다른 자신의 신체적 증상을 그저 병이라 여기고 살아간다. 주인공 웨슬리 또한 자신을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 여기며 직장에서는 상사의 욕과 동료들의 비꼼 속에 무의미한 시간을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천년을 이어온 '결사대' 조직이 그런 그를 불러 "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라고 말해준다.
주인공의 과다 흥분증은 사실 알고 보니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뛰어난 능력이라는 '해리포터'같은 이야기 전개로 시작해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예언자와 비슷한 기계가 등장하고, 결국 생각지도 못한 자가 '내가 니 애비다'라고 말하는 '스타워즈'적인 반전을 거치고 나면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익숙함과 낯섬 사이를 넘나 든다.
그래픽노블의 유명작가인 마크밀러의 원작 느낌을 잘 살렸다는 평가 답게 뜨겁고 매끈한 시각 효과 또한 일품이다. 특히 평범한 회사원이 최고의 킬러로 선택되어지는 중반까지의 씬들은 '매트릭스1' 에서 네오가 구원자로 성장하는 과정처럼 상당히 신선하고 생생하게 관객의 구미를 확 사로잡는다. 또한 주인공을 찾아가서 데려오고 키워주고 감싸주는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한 강인함과 모성애적인 감성은 엄마 젖을 덜 먹고 자란 남성 관객의 욕구불만 까지도 흡족하게 채워서 극장 문을 나서게 해준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웨슬리의 훈련 과정이 끝나는 중반 이후부터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한다. 마치 초장에 너무 힘을 써서 뒷심이 부족한 듯, 어떻게 후반을 끌어가야 할 지 갈피를 못 잡는다. 이유도 모르고 살인을 해야 하는 죄책감에 잠시 고민한 것이 전부일 뿐, 그 이후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는 물론 스토리 또한 개연성이나 짜임새를 잃어버리고 만다.
딱히 흡족한 영화가 최근에 없었기에 영화 중반까지 쉼없이 상승하던 기대치는 그래서 더 빨리 아래로 곤두박질 친다. '결사단' 보스의 야심과 조직을 배반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 간의 사연도 생략되고, 진실 여부가 애매모호한 마지막 대화 내용들은 마치 속편을 예고하는 듯 전개 되지만, 결국에는 뜬금없이 막을 내리고 만다.
재료와 주방장이 남달랐기에 더욱 기대했던 코스 요리를, 납득 할 수 없는 이유로 반 만 먹고 돌아서야 했다.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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