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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을 바라보는 7개의 시선.... 아임 낫 데어
ldk209 2008-06-02 오후 6:16:41 4909   [38]
밥 딜런을 바라보는 7개의 시선....

 

Bob Dylan이 누군지를 피상적이나마 파악하기 위해 대중음악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잡지 <Rolling Stone지>가 20세기 대중음악을 정리한 기사를 인용해보면, 밥 딜런은 20세기 가장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 2위(1위는 Beatles),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3위(1위 존 레논, 2위 폴 매카트니), 20세기 최고의 가수 6위에 선정된 바 있다. 아쉽게도 20세기 최고의 앨범 10위 내에 밥 딜런 앨범은 없는데, 모든 앨범과 노래가 골고루 인정을 받았다는 걸 의미하는 기록일 수도 있다.

 

내가 밥 딜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는 노래를 통해서였다.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번안한 <바람만이 아는 대답>은 단순한 기타 코드가 반복되어 기타 초심자라도 쉽게 연주할 수 있던 노래였다. 한국의 저항가수인 한대수 또는 김민기가 불렀을 그 노래는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아이들은 어른 되나 / 얼마나 먼 바다 건너야 갈매기는 쉴 수 있나 / 얼마나 많은 눈물 흘려야 이 슬픔이 지워지나 / 오 내 친구야 묻지를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 이런 식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Blowin' In The Wind>가 미국에서 저항 노래로 불렸던 것처럼 그것을 번안한 <바람만이 아는 대답>도 저항가요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밥 딜런의 첫 이미지는 저항가수라는 이미지였다. 물론 밥 딜런은 포크에서 전자기타를 처음 사용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등 수난(?)을 당했고, 내가 처음 알게 된 당시에는 활동 중단상태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통기타를 든 밥 딜런이건 전자기타를 든 밥 딜런이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영화에서 밥 딜런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우디 거스리로 대표되는 초기의 포크 뮤직은 난해한 가사 등으로 인해 지식인층에게 열광적 지지를 얻었지만 오히려 민중들과는 거리가 있는 장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운 음색과 통기타의 깨끗한 공명 위주의 음악이 포크라는 인식이 팽배했으며, 이러한 순수지향성으로 인해 포크의 대중성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 등장한 가수가 밥 딜런이었고, 기존의 포크와는 구별되어 민중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한 가사 등으로 인해 그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급격하게 부상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은 영화에서 우디 거스리에 대한 주부의 충고로 표현된다. “너의 시대를 표현하고, 너의 시대를 노래하라”

 

쉽게 저항가수라는 타이틀로 밥 딜런을 정의할 수도 있지만, 그는 어떤 한 단어 내지는 짧은 문장으로 정의 내리기 힘든 존재다. 영화에선 목사가 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 목사가 된 건 아니고 가스펠 송을 부르는 가수로 한 동안 활동했으며, 랭보에 대한 선망으로 책을 써,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미국 중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고 한다. 오랜 잠적을 딛고 2006년 발표한 <Modern Times>라는 앨범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한 그의 일생을 영화화하기엔 한 명의 인물을 내세운 전형적인 연대기적 구성으로는 애당초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영화는 6명의 인물이 7가지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밥 딜런을 표현하고 있다. 일반적인 전기 영화가 한 인물을 몇 명의 배우가 묘사한다고 해도 그건 어릴 적, 젊은 시절, 노년 시절 등으로 나누는 정도라고 한다면 <아임 낫 데어>에서 묘사되는 밥 딜런을 연기하는 6명은 연대기적으로 묘사되는 것도 아니고, 그 인물 내에서조차 원인과 결과가 뒤집어져 있기도 하며, 심지어는 두 명의 밥 딜런이 만나기조차 한다.(랭보는 자신과 마주치게 되면 외면하란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기 영화가 그 인물의 일관성을 강조하는 데 반해 <아임 낫 데어>의 밥 딜런은 아무런 일관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밥 딜런이란다.

 

영화는 특별한 설명 없이 (특별한 설명이 없다는 건 그만큼 밥 딜런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또는 밥 딜런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쉬운 영화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사용된 노래도 밥 딜런의 대표곡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노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정도 주의가 필요하다) 우디 거스리(마커스 칼 프랭클린), 아르튀르 랭보(벤 위쇼), 잭/존(크리스찬 베일), 쥬드(케이트 블란쳇), 로비(히스 레저), 빌리(리차드 기어)라는 여섯 인물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전개한다. 각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밥 딜런의 한 때, 또는 하나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우디 거스리는 밥 딜런의 영웅이자, 초기 포크 뮤직의 상징이었던 우디 거스리란 이름을 그대로 따 왔는데, 단순한 음악 천재로서의 밥 딜런이 아니라, 상당히 허풍도 세고 거짓말에 능하며 잔머리에 뛰어난 밥 딜런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내내 책상에 앉아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랭보는 음악가라기보다는 시인으로서의 밥 딜런을 보여주고 있으며, 잭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밥 딜런이다. 그 잭이 잠적했다가 목사로 등장하는 존은 크리스찬 베일이 일인이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영화배우 로비는 밥 딜런의 개인사와 가정사를 대변하고 있으며, 리차드 기어가 연기하는 빌리는 밥 딜런이 출연했던 영화 <관계의 종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 그 또는 그녀는 밥 딜런이 통기타를 벗고 전자기타를 연주함으로서 많은 대중들로부터 배신자로 공격당하던 때를 묘사한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실제에서 빌려왔지만 또 상당 부분은 상상과 추론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 밥 딜런의 모습은 대부분 쥬드에게서 발견되고 있는데, 한 기자가 당신과 같은 활동가가 몇 명 정도 있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자 ‘대략 136명’이라고 대답을 한 기자회견장의 모습은 대표적이다. 초기 포크 뮤지션으로 분한 크리스찬 베일, 지금은 고인이 된 히스 레저 등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일정 수준 이상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이 영화를 연기로 기억나게 한다면 그 몫은 당연히 케이트 블란쳇의 것이다. 백인이었던 우디 거스리를 흑인 아이로 표현한 건 재치라고 할 수 있지만, 여성인 케이트 블란쳇으로 그것도 가장 논쟁이 심했던 밥 딜런을 표현하게 한 건 대단한 모험이자 실험이라고 할 만하며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해줘야 한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는 외모에서부터 가장 밥 딜런과 닮아 있는데,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연기했냐는 질문에 케이트 블란쳇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많이 웃었고, 담배를 많이 피웠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들었고, 가슴을 붕대로 감은 채 빛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다면 6명이 연기한 밥 딜런의 7가지 모습을 보고나면 밥 딜런의 실체 내지는 실존에 대해 알 수 있을까? 문제는 영화 속 7가지 모습도 사실은 밥 딜런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가요 중에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란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있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을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대학 때 자취하며 키웠던 개는 유독 특정 인물에 대해서 경계를 했다. 그 인물이 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밥 딜런은 인간 중에서도 대단히 독특한 존재인 것만은 확실하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어쩌면 밥 딜런의 발전 에너지는 ‘도그마에 대한 저항 또는 거부’에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저항이라는 아이콘에 대한 거부, 포크는 통기타로 해야 한다는 인식에 대한 거부, 신의 존재에 대한 거부 또는 신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거부, 자신의 상업화에 대한 거부. 그 모든 것이 타인이 규정지은 자신의 도그마에 대한 거부.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극단적으로 표출시키며 앞으로 나아간 밥 딜런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지로 와 닿는 존재, 이미지적으로 그려지는 존재라고나 할까. 밥 딜런의 전기 영화를 밥 딜런이 봤다면 뭐라 했을까. 추론해본다면, 아마도 “I'm Not There”

 

※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 중 하나를 콤플렉스에서 찾기도 한다. 난 콤플렉스하면 도올선생이 떠오른다. 도올 선생의 모든 가족들은 경기고-서울대를 나왔는데, 도올만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올의 평생 학습에 대한 열망을 그러한 콤플렉스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난 밥 딜런 역시 어떤 콤플렉스가 그를 꾸준히 밀고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재밌게도 도올 선생과 같은 공간에서 보게 되었다. 도올 선생은 이 영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 <스폰지>에서 수입과 배급을 담당해서인지 <아임 낫 데어>의 시사회가 중앙극장에서 있었나보다. 여기저기 영화와 관련된 글 중에 영화의 내용보다는 중앙극장의 부실한 시설 등을 질타하는 글을 보게 된다. 중앙극장은 6대 개봉관 시절에도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해서인지 상대적으로 덜 찾게 되긴 했지만,그래도 오랜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한국 최초의 극장인 단성사의 외관을 지켜내지 못한 영화계가 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명보극장도 영화 산업에서 철수한 마당에 폐관하려던 중앙극장에 스폰지, 인디스페이스 등이 입주하면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중앙극장이 초현대식 대형 멀티플렉스로 변환된다 해도 흥행이 쉽게 되지도 않겠지만, 그런 변화가 - 대형화되고, 편해지고, 현대화되는 게 무조건 바람직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 오랫동안 밥 딜런의 음반을 듣질 못했다. 영화를 예매하고 나서 오랫동안 꽂혀만 있던 밥 딜런의 음반을 꺼내어 듣다가, OST를 주문해 mp3로 변환한 다음에 매일 귀에 꽂고 다녔다. 아무래도 익숙한 음악일 때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 때문이었는데, 효과는 충분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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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2007, I'm Not There)
제작사 : John Wells Productions / 배급사 : 스폰지
수입사 : 스폰지 / 공식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nogi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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