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두 고수의 대결을 본다는 것만으로.....
밤새 홍콩 무협영화를 보다 잠드는 미국 청년 제이슨(마이클 안가라노)은 차이나타운의 한 가게를 통해 황금색 봉이 이끄는 금지된 왕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절대고수 루얀(성룡)과 란(이연걸)을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은 그 봉을 지닌 제이슨이 500년 동안 봉인돼 있던 손오공을 깨울 수 있는 예언의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제이슨은 루얀과 란이 이끄는 대로 맹훈련에 돌입한다. 하지만 손오공을 봉인한 인물이자 어둠의 지배자인 제이드 장군(예성)과 또 다른 악의 전사 백발마녀(리빙빙)가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제이슨은 과거 제이드 장군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를 꿈꾸는 소녀 골든 스패로우(유역비)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한편 루얀도 화살을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고 제이슨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진다.
아주 어릴 적에는 로보트 태권 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우면???(이 때는 마징가 제트가 일본 만화인지 몰랐었다) 조금 더 컸을 때는 람보와 코만도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가 나와 친구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거의 농담처럼 하는 얘기 중에서 그나마 진지하게 토론(?)이 가능했던 가상대결 중 하나가 성룡과 이연결의 대결이었다. 람보와 코만도의 대결은 만화 같기도 하고, 너무 허황되기도 해서 실감이 나지 않았던 반면에 성룡과 이연결의 대결은 왠지 정말 진지한 고수들의 피 튀기는 대결이 연상됐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무수하게 논의됐던 가상대결이 둘 다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이제야 이뤄지게 된 바, 결과는 당연하게도 무승부로 끝을 내게 되었다. 둘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면 어느 한 명이 악역을 맡는다거나 패배의 결과를 지게 하는 건 쉽지 않았을 뿐더러, 그건 팬을 무시하는 처사였으리라. 이연걸이 헐리웃에 진출해 처음 작품인 <리쎌웨폰 4>에서 악역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많은 동양팬들이 안타까워했는지....
어쨌거나 서유기를 모티브로 해서 제작되었다는 <포비든 킹덤>에서 단 한 번 치러지는 둘의 대결(영화에서 이 부분은 마치 관객에 대한 서비스의 느낌이 강하다)은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순간적인 정지도 허용하지 않는 말 그대로 두 마리 호랑이의 대결, 절대고수의 대결이란 이런 것이다를 알게 해주는 묘미를 제공한다. 그건 바로 대결의 주인공이 성룡과 이연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그다지 잘 만들어졌다고 평하긴 어렵다. 주인공인 쿵푸에 빠져 사는 백인 청년 제이슨을 가상의 판타지 공간으로 보내는 과정 자체가 꽤나 억지스럽고, 절대 고수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청년 제이슨을 '봉 운전자'로 인정하는 과정도 설득력이 약하다. '봉 운전자'와 그를 도와주는 고수들의 존재는 어쩌면 <반지의 제왕>을 연상하게 되는데, 오랜 전설 속 봉이 현실에 나타난 것에 대한 반응들이 무덤덤하거나 일반 군사들까지 봉을 보자마자 그게 무엇인지 눈치 챈다는 설정 등도 좀 과한 듯싶다. 게다가 익숙하고 예상 가능한 설정들이 연달아 나오는 것도 진부해 보인다. 예를 하나 들면, 제이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스패로우가 죽었고, 옥황상제마저 이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 영화를 보면서 '아마도 제이슨이 현실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 만나지 않을까' 예상했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어느 영화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무수히 많은 영화 속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벌려왔던 '꿈의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 사실 영화에서 둘의 모습은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둘이 출연했던 오래 전 무협영화에서 무수히 보아온 모습의 재현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팬들이 둘의 가상대결을 원한 건 기존의 캐릭터에 근거한 희망인 것인지, 새로운 캐릭터를 요구했던 건 아니다. 만약 이연걸이 취권으로 성룡과 상대하고, 성룡이 태극권으로 이연결과 맞섰다면, 아마 구경꾼들의 야유 소리가 천지를 뒤덮었으리라. "집어 쳐라! 원래대로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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