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평론가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제 시대 검열관이 영화를 바라보듯이 심각하게 감상한다. 머릿속에는 관람 후 영화평을 쓸 구절과 단어와 경구를 메모하면서 분주하게 영화를 보게 된다.
일반관객과 직업관객의 차이는 여기서 비롯된다. 시사회장은 영화에 관한 정보가 들어있는 귀하고 값비싼 보도 자료집과 스크린에 등장한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있다. 무대인사에서 대부분의 배우와 감독들은 그동안의 고생을 떠올리면서 깊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영화를 열심히 만들었으니 잘 감상해줄 것을 당부한다.
필자는 시사회 장에서 10여년 영화를 보는 일을 하다 지방의 개봉관에서 개봉 첫날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한지 한 달에 접어들었다. 개봉관은 시사회 같은 문전성시는 없고 소수 관객만 매표소에 줄을 선다. 하지만 커플들이 영화를 보면서 은밀한 밀어를 즐기는 전형적인 영화관 풍경과 모처럼 영화를 보기위해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영화 관객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20대 이거나 50대 주부관객이거나 상관없이, 팝콘을 들고 영화를 보거나 생수를 마시며 관람하거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영화를 대하는 태도며, 영화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이다.
밀회를 즐기면서도 시선은 스크린에서 떼지 않으며 정장 입은 상태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영화감상 후에도 영화의 여운을 화장실까지 지속시켜간다. 필자는 그동안 수많은 개봉작을 미리 관람한 다음 소수 문제작에 대해서만 리뷰를 작성했다.
이제는 한 사람의 관객의 자리로 돌아가 개봉작 중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부터 출발한다. 관객의 관람 선호도와 선택의 동기에 대해 개인적 체험으로 성찰하게 되었다. 이번 주도 영화예매 사이트에서 영화를 결정하기 전에 고심하였다.
우선 감독의 역량과 작품의 비중을 고려할 때 눈길을 끄는 한국영화가 드물었다. 그 다음으로 유럽영화를 눈여겨봤지만 역시 여의치 않자 동아시아로 눈길을 돌려 유덕화와 매기큐가 출연하는 한중 합작 영화로 여겨지는 <삼국지 용의 부활>에 머물렀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한 다음 극장의 매표소 앞 광고 선전물을 통해서도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와 중국영화를 놓고 망설이다.
<삼국지 : 용의 부활>을 선택하였다. 선택은 원작의 힘 보다는 유덕화와 매기큐라는 스타의 연기와 중국무협영화의 전통을 이어온 스펙터클한 무술장면에 대한 기대로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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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성월동화>를 만든 이인항이며 그는 중국 5세대의 명성이나 오우삼, 왕가위로 이어지는 홍콩의 대가의 반열에 못미치지만 중견 감독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자 첫 시퀀스는 컴퓨터 그래픽과 수많은 엑스트라 동원으로 화면은 기름졌으며 편집의 컷을 연결하는 리듬도 칼과 칼이 부딪치는 긴장감을 잘 유지해주었다. 유덕화의 눈빛도 삼국지의 영웅 조자룡의 풍모를 살려내는데는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상대적으로 유비와 관우와 장비는 삼국지의 비중에 비해 무게감과 일세를 풍미한 무인으로서 갖춰야할 일당백의 기개를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자룡은 촉나라의 황후와 유비의 아들 유선을 조조 진영에서 구해내면서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영화의 주인공이며 원작 <삼국지>의 영웅 조자룡을 보여주기 위해 유선 구출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원작 삼국지에 충실하면서 영화적으로 변형되었다.
원작은 다른 텍스트로 옮겨갈 때 마다 변형되는 것은 거의 운명적이다. 심지어 우리에게 알려진 <삼국지>조차도 역사서인 진수의 <삼국지>가 나관중에 의해 소설로 옮겨지면서 풍부한 이야기와 인물들이 증장시켜 <삼국지연의>로 거듭난 이력을 갖고 있는 텍스트다.
그래서 <삼국지>는 청나라의 역사학자 장학성에 의하면 ‘칠실삼허(七實三虛)’의 정신으로 기술된 소설이다 즉 7할은 꾸며낸 이야기로 채워졌으며 3할만 사실에 근거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실제 조자룡의 유선구출 장면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역사의 서술된 내용과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나관중은 조자룡이 조조의 80만 대군을 뚫고 들어가서 미부인과 유선을 발견하고 미부인은 우물에 투신 자살하고 유선을 자신의 갑옷에 감싸 구출하는 것으로 기술하였다.
실제 역사서는 조조 군사 5천기를 따돌렸으며 유비의 아들 유선을 품에 안고 감부인을 보호하여 화를 면하게 했다고 짧게 기록되었다고 한다. 칠실 삼허를 근거로 한 영화는 구실일허(九實一虛)의 정신으로 더 많은 이야기의 가공절차를 밟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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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조자룡의 유선구출을 조조과 그의 손녀 조영이 지켜보는 장면으로 처리한다.
조영의 시선은 조자룡과 손녀 조영의 대결구도로 가기 위한 영화적 장치이며 변형이다. 조자룡이 조조의 보검 청강검을 빼앗고 유비의 진영으로 돌아온다. 이로 인해 그는 고향 상산의 영웅이 되어 금의환향하며 고향의 그림자극에도 등장하여 촉나라의 국민영웅에 등극한다.
이후 영화는 촉의 건국까지 몽타쥬로 시간을 점프하며 촉의 조자룡과 위나라의 조영의 대결구도로 치닫는다. 조자룡의 위기와 몰락의 드라마를 위해서 나평안을 등장시켜 해설자와 배신자의 임무를 부여한다. 결국 인정 받지 못하는 인물은 자신의 결핍으로 인해 누군가를 파멸의 길로 떠민다.
나평안의 인정결핍으로 조자룡을 배신하고 그로 하여금 영웅의 최후를 향해 돌진하게 한다. 이 영화는 삼국지의 주역인 유비와 관우와 장비에 비해 조명을 덜 받은 조자룡의 재평가와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조자룡의 영웅만들기는 일정한 성과를 보였지만 조영과 조자룡의 대결구도와 영웅의 최후로 내몰기까지 보여준 서사적 긴장은 기대에 못미치고 만다. 중국무협영화의 애호가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전체 관객에게 고른 지지를 받기에는 빈틈이 많다. 조자룡 역의 유덕화는 말을 타고 프레임을 휘저었으나 조영의 매기큐와 나평안의 홍금보는 비중 약한 조연으로 발이 묶여버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