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음악으로 점철된 한 편의 동화....
영화를 보면서, '이거 완전 동화네'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전혀 상반된 두 가지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 '환상적 판타지'의 의미일 수 있고,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유치하다', '말도 안 돼' 등의 의미일 수 있다. 내가 <어거스트 러쉬>를 보고나서 느꼈던 건 후자의 의미가 강하다. 만약 이 영화의 장르가 '뮤지컬'이라고 한다면 그건 다를 수 있다. 왜냐면 뮤지컬은 스토리상 건너뜀, 비약, 우연 등이 충분히 가능한 가장 판타지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나름 유명한 첼리스트인 라일라(케리 러셀)와 그룹의 기타 겸 보컬인 루이스(조너선 리스 마이어스)가 한 파티장에서 한 눈에 빠져 하룻밤을 보낸다. 왜 한 눈에 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만난 첫날 다른 장소도 아닌 옥상에서 하룻밤을 보낼 정도로. 라일라가 평소 락커에게 일종의 성적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또는 클래식 연주에 환멸을 느끼고 탈출을 꾀하고 싶었던 것인지, 영화상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버지에게 반항적이어서 그랬다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의 말에 순순히 택시를 타고 헤어진 두 연인은 오랫동안 상대를 찾지 못하고 헤맨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너무 쉽게 찾는다. -,-;;
자, 이 영화를 정리해보자. 우연히 연인이 만나 사랑을 나눴고, 우연찮게 단 한 번의 잠자리가 임신으로 연결되고, 우연찮은 교통사고로 아이는 고아원에 맡겨진다. 그 아이는 다른 고아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부모가 있고,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음악을 하는 부모로부터 천부적 자질을 물려받은 그 아이는 우연찮게 엄마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흘러 들어가고, 우연찮게 천재성을 과시하고, 우연찮게 부모님과 재회한다. 이 무수한 우연을 연결하는 건 오로지 음악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뮤지컬이 아니라, 드라마라면 음악이 아닌 이야기, 스토리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음악만이 존재한다.
이 영화는 지독한 신파거나 또는 환상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동화다. 어거스트 러쉬(프레디 하이모어)가 보여주는 그 음악적 천재성은 누구나가 꿈꿀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단 음악만이 아니라, 시험보기 전날만 되면, 내 머리에 교과서 내용은 쏙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상상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평소의 반복되는 예복습만이 좋은 성적을 보장한다. 그리고 아무리 음악의 천재라도 기타를 배우기 위해서는 정말 피를 봐야한다. 부드러운 왼손가락 끝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를 반복하다보면 어느덧 굳은살이 잡히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손가락이 아파 기타를 치지 못한다. 단지 기타의 6줄이 무슨 음인지를 아는 것하고 기타를 연주하는 것하고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하룻밤 사이에 양손 해머링까지 습득하는 데에야 무슨 할 말이 필요할까.
영화를 보면서 우연으로 점철된 한국 드라마가 떠올랐다. 한국의 유명한 대기업(CJ엔터테인먼트)이 투자에 참여했기 때문일까.(그다지 많은 비중도 아닌데) 물론 모든 영화가 현실적이거나 논리적이거나 또는 과학적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그렇지 않은 점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특별히 미학적으로 뛰어난 영화가 아니라면 최소한 그 영화 안에서는 나름의 일관성을 가져야 하고, 그래야 관객이 납득할 수 있다. 무조건 음악만 믿으면 만사형통이라니,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난감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