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낙관적이라 오히려 서글픈 영화....
처음 이 영화의 제목과 스토리를 보자, 대뜸 한국영화 <제니와 주노>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 영화를 본 건 아니었다. 대충의 스토리 정도를 들었고,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정도만 기억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한 편에선 미국 영화 <주노>가 한국 영화 <제니와 주노>를 표절했느니 하는 논란이 일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거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임신을 했단다. 보통 이런 설정이라면 그다지 흥겹다거나 즐거운 설정은 아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공중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태아를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사마리아를 떠올릴 것이다. 돈 때문에 어른들의 욕정에 희생되는 어린 소녀의 썩어가는 영혼 같은 느낌.
그런데, 청소년 임신을 다룬 <주노>는 결코 한 소녀의 가혹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드롹과 하드코어 무비를 즐기는 독특한 소녀 주노는 그것이 사랑인줄도 모른 체, 그저 호기심에 의자에서 성관계를 가진 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생 가장 끔찍한 십자가(임신여부를 확인하는 시료의 임신표시)를 본 주노는 누구나 생각하듯이 낙태를 먼저 떠올리고 실행하려 하지만, 태아에게도 손톱이 있다는 자그마한 사실에 낙태를 포기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들의 낙태 반대 운동에나 어울릴법한 도덕적 영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주노는 낙태를 포기하자마자 아기를 맡아서 키워줄 대상자를 동네 신문을 통해 물색한다. 마치 자신은 단지 남에게 건네질 물건을 10개월간 보관하는 중간 정류장 정도 된다는 식이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부부를 찾아낸 주노는 즉각 이 사실을 아버지와 새 엄마에게 알린다. 마약과 같은 일인 줄 알던 부모는 아이의 임신 사실과 아이의 향후 처리 방향에 대해 적극적인 협조자의 위치에 선다. 아버지는 아이를 입양할 집에 같이 가주고, 새 엄마는 임신부에게 좋은 약과 음식을 챙겨준다. 아무리 성이 개방된 사회라도 미성년자의 임신을 그렇게까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그 모습은 결코 가볍거나 가족에 대한 무관심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하면 문제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일까.
주노가 이쁜(아름다운이 아니라) 이유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을 지려하기 때문이다. 주노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성숙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문제를 회피하거나 어른인 척 헤쳐 나가려 하지 않는다. 바로 자신의 주관으로 자신의 판단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어쩌면 주노의 그런 자세는 어려운 일을 회피하려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아이를 너무도 바라는 바네사와는 달리 남편인 마크는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한 남자 어른이다.(남자는 철들지 않는다!!!!) 그는 막상 아이가 생기려하자 두렵고 무서운 생각에, 그리고 아직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핑계로 회피하려 한다. 영화를 보다 중간 정도에 와서 혹시나 주노와 마크의 정분이 싹트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체 이 영화를 극찬했던 평론가들은 대체 뭐야??? 새 엄마가 마크 혼자 있을 때 집에 찾아가지 말라며, 오해를 살지 모른다는 지적을 하자 어른들 사회는 참 복잡하구나 라는 걸 느끼는 주노. 확실히 나도 기성세대, 어른의 입장에 주노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성년자의 임신을 다루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문제가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주노와 아버지의 대화에서 보이듯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 나가는, 즉 사랑의 본질에 관한 영화다. 주노는 남자친구인 블리커와의 관계가 단지 성에 대한 호기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블리커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주노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이제 자신의 아이를 맡아 키울 부모가 이혼하는 광경을 목도한다. 그래서 주노는 왜 두 사람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지 답답해한다. 그럼에도 주노는 아이를 혼자 남은 바네사에게 입양 보낸다. 왜일까? 사실 주노는 정말 행복한 집안, 자신의 부모처럼 이혼하지 않을 집안으로 아이를 입양시키고 싶어 하지만, 새 엄마가 자신을 위해 간호사와 싸우는 모습을 보며, 단지 낳았다는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만큼 주노는 훌쩍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블리커를 사랑했고, 그랬기 때문에 성관계를 가졌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현재 사랑이 가장 소중함도....
미성년자의 임신을 다룬 영화치고는 이 영화는 너무 낙관적이고, 밝고 명랑하다. 당연하게도 엘렌 페이지의 천재적 연기로 인해 <주노>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영화가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주위 조연들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특히 임신한 친구에게 콜라, 햄버거 같은 음식을 못 먹게 가로 막는 친구의 연기도 딱 그만큼 적격이고, 아이를 입양한 제니퍼 가너는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가장 아름다웠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제발 앞으로는 이상한 액션영화에 그만 출연하시길....)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는 음악으로 인해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를 보고 나자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OST 사야겠다"란 생각이었을 정도로... 그래서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음반을 구입했고 열심히 듣고 있다. 정말 좋다. 근데, 왜 마지막 주노가 아이를 낳고 침대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자꾸만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