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스릴러....
추리소설가인 경주(오만석)는 요즘 살인충동을 느끼는 일이 많다. 출판사 편집장은 경주를 무시하고, 집주인은 밀린 월세를 독촉하고, 거리의 폭주족들은 그에게 소화기 분말을 쏘아댄다. 경주의 살기는 동네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딛고 드러난다. 어느 날 밀려드는 살인충동을 이겨내지 못한 경주는 집주인을 살인한 뒤, 연쇄살인범의 수법을 모방하여 시체를 전시한다. 경주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이자 형사인 재신(이선균)은 새로운 살인사건을 모방범죄가 아닌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한다. 한편, 경주와 재신 말고도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또 다른 남자가 있다. ‘어린왕자’란 이름의 문구점을 경영하는 효이(류덕환)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착한 청년으로 소문나 있지만, 소년 같은 얼굴 이면에 잔혹한 살인본성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형사와 연쇄살인범, 그리고 모방범죄자를 한 동네에 밀어넣은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들의 숨겨진 관계를 추적한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우리동네>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엔 일단 안도가 된다. 그리고 사실은 이런 동네를 찾기는 정말 힘들 것이란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힘이 빠진다. 물론 당연하게도 많은 스릴러 영화들이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들겠지만(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일까)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세 명-경주, 재신, 효이-의 관계는 너무 꼬이고 꼬였다. 뭔가 살인을 극적으로 포장하려는 도구를 과거 이 셋의 인연에서 찾다보니, 이 셋은 너무도 작은 세상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만 생긱해봐도, 이 영화엔 너무나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알게 된다. 대체 사람이 살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영화의 경주처럼 사람들도 살아가면서 많은 살의를 느끼게 된다. 문득문득 느껴지는 살의 중에서 10%만이라도 실제 살인으로 연결된다면 아마 인간 사회 자체가 붕괴할 것이다. 어쨌거나 거의 대부분, 아마도 99%쯤 되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살인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 것이고, 실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사람들 중의 많은 수도 과실에 의한 살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동네>의 주요인물 세 명 중 효이는 그렇다치고, 나머지 두 명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끔찍한 살인을 잊고 지낸다.
한 명은 과실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를 죽였고, 그로 인해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된 친구는 빚쟁이를 찾아가 죽인다. 그런데 이 둘은 그 이후로도 계속 친구 관계를 유지하며 같은 동네에서 성장한다. 100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 처참한 살인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지낸다는 건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잊을 수 있다 쳐도, 효이에 의한 연쇄 살인-피해자들을 줄로 묶어 전시해 놓는 독특한 방법으로 이미 과거에 살인을 저지른 당사자가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설정은 아무리 봐도 어처구니가 없다.
이렇게까지 얘기가 진행되면, 분노를 주체 못해 사람을 죽인 어린 고등학생이 울면서 왜 그런 식의 이상한 방법으로 시체를 전시했는지까지 의문은 더욱 확장된다. 물론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 결함이긴 하지만, 셋의 꼬이고 꼬인 과거사에 비하면 그나마 봐줄만하다. 셋의 꼬인 과거는 현재 효이가 저지르고 있는 연쇄 살인을 경주, 재신과 연결지으려는 무리한 시도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경주, 재신의 살인과 효이의 살인은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사건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효이가 경주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선생님에게 인정 받고 싶었다는 둥의 설을 푸는 장면들, 거기에 마지막의 그 비장한 최후는 이 영화를 어쩌면 한 편의 코미디로 기억하게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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