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래된 정원’을 봤다. 나는 감독의 이름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광화문에 자리한 예술영화관 ‘시네 큐브’에서 개봉한 황석영 원작의 소설을 영화화 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를 당황케 하는 것은 그 이유와 정체 모를 나의 눈물이었다. 쥐어짜는 그런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흐르는 눈물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그런 영화였다. 슬퍼서 만이 사람이 울까? 옆자리의 와이프도 일행도 모두 같았다.
원작 소설과도 또 다른 새로운 영상과 시각으로 우리의 80년대를 그리고 현재를 담담하게 이야기해주는 영화였다. 한 편의 영화가 이렇듯 가슴을 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가끔 서구의 영화에서 느끼던 잘 만들어진 구성과 연출, 배우들의 열연, 기막힌 영상이 어느 정도 그랬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만큼의 거리가 있는 다른 나라의 감성과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었다.
영화 ‘닥터 지바고’는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을 표현한 것인 만큼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감동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니 감동이 큰 만큼 마치 서구의 화려한 궁전과도 같이 가슴 속 밑바닥까지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것만이 가슴에 와 닫는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마치 그것은 누구나 매일 먹는 김치나 된장이 그저 그래서 쳐다보지도 않다가 어느 날 정말 제대로 된 맛을 내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 같은 거다.
제대로 된 우리의 이야기가 좋은 연출과 훌륭한 배우를 만나서 빛을 발하는 정경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80년대는 우리의 겨울이면서 봄이었다. 어둠이 깊어가는 산골의 겨울과도 같은 스산함이 넘쳐 있었지만, 저 산 깊은 곳에서 새로운 순이 돋아나는 때였다. 당시의 그들은 한갓 20대의 청춘이었다.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했던 짐들은 60년대, 70년대의 젊은이들과는 또 다른 가혹한 것이었다. 지금의 젊은이들과도 다르다.
그들은 ‘젊은이 젊은 놈들’이라는 청년문화의 선두에서 낭만적이기까지 했던 6-70년대의 세대와는 다른 죽음의 그림자가 늘 함께했던 시대 속에서 산화한 세대들이다. 그들은 시민문화운동의 여명을 열었고, 그 열기는 붉지 않고 검은 색이었다. 우리는 안다. 그 검은 색은 영광이며 동시에 좌절이었음을.
종합예술이라는 영화의 힘은 가끔 이렇게 전신을 뒤흔든다. 이 영화는 2007년 새벽의 편안하지만 마음을 흔드는, 새벽잠을 깨우는 눈밭에서 들리는 종소리 같은 것이다. 이 작은 영화는 시끄럽고 말도 많은 우리 대중문화예술의 현주소를 담담히 그러나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것만 같다. 나는 지금 그 영화를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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