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전후 미국의 사실적인 석유업자 이야기
[데어윌비블러드]는 석유를 둘러싼 이야기다. 현재도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고 있고, 작년 말 우리나라 서해안을 뒤덮었던 그 기름에 대한 이야기란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서부개척의 끝 무렵, 성공과 실패가 하루 아침에 바뀌던 그 시절, 땡볕 아래 황무지를 파헤치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扮)다. 험난한 여건에 굴하지 않고 성취 욕구를 위해 야심을 불태우는 서부의 사나이다. 만고의 노력 끝에 유정을 발견한 그는 본격적으로 석유업자의 길을 가게 된다. 동료의 죽음으로 홀로 남게 된 아이를 양아들로 거두게 되고, 오히려 그 아이를 이용해 야비한 속내를 감춘 가족적이고 포용력 있는 사업가로 둔갑하게 된다. 영화는 석유채굴과 관련한 사실적인 이야기와 미국의 20세기를 전후한 실제적인 이야기를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거기에 다니엘이라는 치사한 인물을 통해 부도덕한 거래흥정과 사업수완이 능수능란하면서도 비열하게 소개 된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그 시대에 관한 것들, 그 당시 존재했던 사회, 그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의 하루 일과, 그리고 탐광자들이 만든 그들만의 작은 공동체 등에 대한 실상을 낱낱이 보여 준다. [데어윌비블러드]는 부동산투기로 얼룩진 악덕 석유업자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폴 토마스 앤더슨! 그 믿을 수 없는 상상력의 깊이
그는 아직 30대의 나이다. [부기나이트]로 묵직한 충격을 안겨줬을 때에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근래에 [펀치드렁크러브]로 4차원의 엉뚱 발랄한 로맨스를 선보였었다. 그 이후 5년 만에 찾아온 신작이 바로 [데어윌비블러드]다. 이 작품에 3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단 5편의 장편영화 이력을 갖고 있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은 자신만의 패러다임을 확고하게 구축한 감독이다. 늘 각본도 함께 소화하면서 뛰어난 상상력을 뽐낸다. 아무래도 작가주의적 성향이 짙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대중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적으로도 전작들을 별로 감명 깊게 보지 못했고,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데어윌비블러드]만큼은 썩 나쁘지 않았다. 유려한 카메라 워크와 담담한 카메라 앵글 그리고 그만의 진중한 화법은 충분히 탄복할 만했다. 하지만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式 진정성은 지루함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듯하다. 게다가 미국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묘사되는 시대적 상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뿐더러, 인물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정서들도 전부 공감할 수는 없다. 다행히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향효과 덕분에 그 따분함과 불편함을 견딜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이번 영화에서 벌거벗은 인간에게 겨냥된 폴 감독의 직설적인 시선은 인간으로서 수치심에 치를 떨게 만들 정도로 잔혹하고 회의적이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 가늠할 수 없는 연기력의 깊이
[갱스오브뉴욕]에서 디카프리오 보다 빛나는 그의 악역 연기는 아직도 깊이 각인되어있다. 이미 각종 유수영화제에서 그 연기력을 인정받아 왔고, 특히 이번 [데어윌비블러드]로는 골든글로브와 미국 및 영국 아카데미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조합 및 협회상을 대부분 석권했다. 정말이지 그의 신들린 연기는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다. [갱스오브뉴욕]을 볼 때만 해도 이보다 더한 그의 악역연기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번 다니엘 플레인뷰는 또 다른 추악함으로 무장해 있었다. 절대 악(惡)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 믿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악행을 일삼는 인물을 연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과정보다 목적에만 집착하는 인간상을 거침없이 표현해 냈다. 극중 양아들 HW에게 경제관념을 주입시키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얄궂게도 김구라와 동현이가 떠올랐다. 다니엘은 과도한 실용적 인생관으로 인해 양아들과 멀어지게 되고, 지나친 자존심은 살인도 불사하게 된다. 자기애에 갇혀버린 관념들은 타락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결국 몰락해 버리고 만다. 한 남자의 인생에 담긴 이기적이고 사악한 기운은 인간 전체에 대해 적나라한 시선으로 자리 잡게 되고, 추잡스러운 욕망을 들춰내게끔 만든다. 이 모든 것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무지막지한 연기력으로부터 분출되었다는 것에 감탄할 따름이다.
실용적인 다니엘 vs 종교적인 일라이
[데어윌비블러드]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고, 전반적으로 괴물같이 캐릭터에 주입된 그의 면모는 너무도 훌륭했다. 그의 연기가 극에 달하는 부분을 두 장면만 뽑아 보자면 첫 번째, 토지임대 허락을 위해 거짓 회개를 하는 장면이고 두 번째, 폭력성이 극으로 치닫는 마지막 밀크 쉐이크 장면이다. 그렇다! 그 장면들이 모두 극중 목사 일라이(폴 다노扮)와 대면하는 장면이다. 그만큼 두 인물 축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나친 개인주의와 현실주의로 무장한 캐릭터에 맞서기 위해 극단적인 종교관을 가진 사이비풍 광신도를 대비시킨 인물구도가 매우 인상 깊었다. 자격지심 강하고 지독한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는 다니엘을 비록 다스릴 수는 없는 일라이였지만 그 다니엘의 참상이 여실히 드러날 수 있도록 돕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은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고, 일라이는 신에 대한 궁극적인 추종을 하고 있었지만 그네들은 둘 다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맹점을 드러내게 되고 부(富)의 성공과 신(神)의 숭고함 뒤에 감춰진 정신적 패닉상태로 타락하고 만다. 나락으로 떨어져 서서히 부서져 가는 그 하찮은 두 인성(人性)을 보고 있자니 씁쓸하고 허탈할 뿐이었다. 이 영화는 두 인물의 조잡한 싸움에 초점을 맞추고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재미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원초적인 본성을 내세운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데어윌비블러드]는 다니엘이 석유업자로 꿈을 성취하는 과정과 종국에는 인간으로서 타락하는 모습을 무덤덤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열정적인 야망이었지만 추악한 탐욕으로 변질되어 버렸고, 도전적인 성공은 처참한 파멸로 전락하게 된다. 영화는 초반에 한 인간의 인생에 대해서 그려내고 있다. 그러다가 점점 그 인생 속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파헤쳐 내고 있다. 불신으로 가득한 부정적인 인간관과 염세적인 가치관으로 꽁꽁 동여맨 다니엘이라는 인물을 통해 영화는 인간의 본성에 냉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원유를 피에 비유하며 원죄적 회귀와 실용적 파괴를 묘사하는 영화 전반의 철학적 상념들은 이를 증명한다 하겠다. 영화의 엔딩은 그야말로 탄식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개탄스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극중 갑자기 석유가 터지면서 양아들 HW가 농아가 되는 장면이나 그 솟구치는 원유에 불이 붙어서 화염(火焰)과 흑연(黑煙)이 하늘을 뒤덮는 장면, 그리고 HW가 집에 불을 지르는 장면 등을 되뇌어 보건대 그 콸콸 쏟아져 나오는 원유는 부귀영화로 대변되기도 하지만 그에 따른 피의 대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찬송가 202장(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Power in the blood>)이 자꾸 입에서 맴도는 가운데 원초적인 본성에 깃든 원죄적 부끄러움이 자꾸 고개를 쳐든다. 과연 주의 보혈이 있을 것인가, 인간의 유혈이 있을 것인가! There will be bl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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