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가 본 마지막 영화는 [어둠 속의 댄 서]였습니다. 오로지 라스 폰 트리에와 까뜨린느 드뇌브만 보고 택 한 영화였지만 꼭 봐야 한다는 느낌에 비 내리는 수영만에 앉아 있 었죠. 감독이 감독인지라 영화가 어떤 느낌을 줄지는 보기도 전에 이미 각오한 바였지만, 그래도 영화가 끝났을 때 참 견디기가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그저 아들의 눈을 고쳐주고자 했던 어머니의 비참 한 최후와 죽어가면서까지 거짓말을 하던 또 한 사람 때문에 세상 엔 과연 선이라는 게 존재하나 하는 우울함이 가득했거든요. 갑자 기 [어둠 속의 댄서] 얘긴 왜 하냐고요? 바로 류 때문입니다.
뙤약볕 아래 유독 눈에 띄는 청록색 머리로 휘청 휘청 걸어가고 있 는 그의 이름은 류입니다. 그에겐 소중한 게 세 가지입니다. 누나, 그림 그리고 애인인 영미. 그런데 소중한 누나가 그의 곁을 떠나려 고 합니다. 나날이 약해져 가는 누나를 살릴 길은 오직 신장이식뿐 이죠. 그러나 그의 신장은 누나에겐 맞지 않는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을 후벼 팝니다. 말도 못하고 들리지도 않는 자신의 꿈 인 화가를 이뤄주기 위해 학교도 그만 두고 온갖 고생했던 누나 를... 단 하나 뿐인 피붙이인 누나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찾은 차악의 해결책은 불법장기매매. 그러나 사기를 당해 오 히려 돈 날리고 신장마저 도둑맞은 그는 해고까지 당합니다. 그 순 간 기적같이 나타난 기증자. 그러나 그에겐 땡전 한 푼 없습니다. 절망하는 그에게 영미는 해결책을 제시하죠. 착/한/유/괴/..라는...
누나를 살려야 합니다. 류에겐 그것만이 모든 윤리의 기준이었죠. 돈만 받으면 아이를 돌려보낸다는 착/한/유/괴/를 꿈꾸었던 류와 영미. 결국은 헛된 희망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영화를 본 후 한동안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복수심에 가득찬 아버지? 수영할 줄 몰랐던 아이? 아이를 차에서 나오게 한 정신지 체아? 아이를 유괴한 류? 유괴를 제안한 영미? 류를 해고한 회사? 사기친 나쁜 놈들? 아니면... 병에 걸린 누나?......??? 생각이 자꾸 만 꼬이더군요. 결국은 모든 것이 원망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중 간에 단 하나의 연결고리만 끊어졌어도 이런 파국은 없었을텐데... 잘못이 없으면서도 가장 큰 잘못을 하는 이런 인생의 오류는 결코 사라지질 않는 건가요? 그래요... 일단 독을 먹었다면 접시째 먹었 어야 겠죠. 차악이 최악이 되는 끔찍한 결과가 나오더라두요.
아무런 대사 없이 오로지 눈빛과 손짓만으로 류의 절망과 극한 감 정을 표현하던 신하균은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강렬하게 남습니 다. 마치 활활 타오르다 한순간에 꺼지는 불꽃처럼 보일정도죠. 전 혀 안 섞일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묻어 들어가고 묻혀있는 와중에 도 눈에 확 들어오던 전작에서처럼 배두나는 자신의 몫을 정확하게 해내고 있었습니다. 송강호의 연기 중에서 딸 검시할 때와 류의 누 나 검시할 때 표정의 극명한 차이는 그 끝을 예고하는 듯해서 제일 섬뜩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엔딩 크래딧을 뒤덮던 그 중얼거 림. 저 보고나서 가위 눌리는 줄 알았습니다. --;; 소문대로였던 화면의 잔인함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보다 멀리서 잡거나 소리를 사용하거나 대사를 통해서 그 잔인함을 관객인 제가 상상하 게 만드는 여백 때문에 더 끔찍하고... 더 잔인하게 다가오더군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나름대로 좋은 사람입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돌아가기 위해 했던 일이 결국 나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파괴하는 과정을 보면서 비참하고, 무엇보다 내가 주인공이라도 저렇게 했을지 모른다는 사 실에 다시 한번 괴로웠습니다. 내 속 깊숙이 가라 앉아있는 이기심 과 잔인함을 휘저어 확인하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요. 결말에 대해 좋다 나쁘다 말씀들이 많으시던데... 전 어찌 보면 가장 타당 한 결말이 아니었나 싶거든요? --a;;; ‘착하면 뭐해. 아무 소용이 없는 걸.’이란 씁쓸한 혼잣말만이 남는 [복수는 나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