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경쾌하게 시작된 영화는
서서히 신파의 기운을 덧붙이더니
영화의 마지막엔 그냥 덕지덕지 붙이고도 모잘라
앤딩크레딧 음악을 비장하고, 슬프고 장중하게 깔았고,
김명민이 엄마라 불러보지 못한 어머니의 무덤가에 앉아 통곡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왜! 왜! 꼭 그래야만 했나요~~~~
차라리 영화가 처음부터 음울하게 시작했다면,
김명민이 털털하며 터프한 이미지로 시작할 것이 아니라
뭔가 구겨진 그늘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라는 정보를 깔아줬더라면
영화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죽자살자 덤벼드는 것 같던 후반부가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았을지도 모를것을....
과장된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난 손예진의 연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뭔가 B급스러운 과장이 재밌었다.
차갑고 냉소적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소매치기 두목 여자....
여자를 사장으로 믿고 일할 수 있겠냐는 신참 바람잽이에게 긴 머리카락 하나로 만연필을 훔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손예진 멋있더라.
쌍둥이파에게 골목길에서 얻어터지고도 통증을 느끼기 보단 김명민을 꼬실 생각을 하는 모습 좋았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초라하고, 소극적이고, 벌벌떠는 아무것도 아닌 여자로 돌변하는데
너무 갑자기 돌변하는지라 그녀가 전반부에 보여줬던 캐릭터는 빌려입은 겉옷이었을 뿐이고,
결국은 상당히 수동적인 여자가 그 외투 안에 깊이 깊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는 걸 충격적으로 깨달아야 했다.
징그러운 발견이었다.
그 때부터 급속도로 영화가 방향을 전환하더니만
신파의 늪으로 자진해 자살하듯 걸어들어갔다.
김해숙이 어머니라는 지겨운 껍데기를 벗고 인간 김해숙으로 보여주던 전직 소매치기의 카리스마도(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좋았던가. 면도칼을 씹어서 툭 뱉어낼 때, 난 정말 좋았던 것이다....지하철 노숙자 여자들과 한판 뜰때도 그렇고, 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에게 다시 돈다발을 건낼 때도 그렇다. 좋았던 것이다.)
그러던 그녀가~
당뇨 병과 아들에 대한 모정으로 순식간에 신파가 되었다.
냉소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무방비 도시엔 냉소가 끼어들 좋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할복자살하듯 배를 가르고 너무 직접적인 날것의 감정들을 쏟아놓기만 하다니.....
현실의 1%정도의 냉소만이라도 반영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제목이 무방비도시인데
왜 영화의 결말은 비극적인 모정과 뒤늦은 아들의 회환으로 끝나야 한단 말인가.
앤딩 음악을 들으며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누군가 친숙한 사람이 통곡을 하는데 나는 동정할 맘이 전혀 생기지 않을 때의 뻘쭘함을 뒷통수로 내내 느껴야만 했다.
뭔가 기분이 미안하면서 불편하고, 당황스럽고 무거워지는 그런 상태로 극장을 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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