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롤러코스터 <폴라 익스프레스>
어린이의 마음속에 산타는 아기예수보다 더 큰 존재일 것이다. 이렇듯 크리스마스의 신! 산타는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이다. 지금껏 크리스마스 영화들을 보면서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고 산타가 산다는 북극으로 여행을 떠나는 내용은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따뜻한 온정과 해프닝을 그린 영화가 주를 이루었던 것에 비해 이 영화는 산타와 루돌프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양말에 선물을 놓고 간다는 꿈같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이 세월이 흐르면서 퇴색되어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부터 산타클로스가 꾸며낸 이야기인 줄 알았냐? 이런 말이 오가는 요즘, 산타클로스는 더 이상 동심의 판타지가 되지 못한다. 크리스마스 시즌 자본주의가 가장 좋아할 만한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한 듯 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각박한 세상에서 산타클로스는 그의 실재 존재여부를 떠나 영혼의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아기예수가 전하려는 사랑과 구원의 정신이 산타클로스가 전하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테마는 성경의 내용과 맞닿아있다. 영화의 주인공 꼬마는 예수의 부활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던 제자 토마스와 닮아있다. 급행열차 지붕에 기거하는 부랑인은 하느님이고 산타클로스는 예수를 상징한다. 크리스마스, 아기예수 탄생의 환희와 기쁨을 진정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은 방울소리를 듣지 못한다. 세파의 떼에 꿈과 판타지를 읽어버린 지금의 시대에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돌려주고자 하는 것이 영화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이 영화는 분명 3D 최첨단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실사와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껏 3D 애니메이션은 동물이나 곤충 등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의인화하는 방식으로 인간사회를 풍자해왔다. 이에 반해 <폴라 익스프레스>와 <인크레더블>은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여 인간사회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좀 더 공감이 가고 바로 나와 내가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아이들의 표정 애니메이션, 그리고 톰 행크스라는 헐리우드 대표배우를 모션 캡쳐한 열차 차장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톰 행크스를 본뜬 캐릭터는 실제 톰 행크스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톰 행크스라는 배우가 쌓아온 유머를 겸비한 낙천적인 아버지상의 아이콘은 3D 캐릭터를 접하는 관객에게 친근감을 안겨주었다. 이럼으로써 이 애니메이션은 여타 애니메이션에 비해 영화적 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선다.
그렇다면 왜 실사영화로 만들지 않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것인가? 에 의문이 든다. 그것은 산타가 북극에 산다는 꿈같은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픈 현대인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북극으로 향하는 열차가 존재해야 하고, 여행 도중의 온갖 모험과 북극의 산타요정 마을을 제대로 표현하기에 실사영화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인간의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 모든 것을 창조가능하다. 산타가 산다는 북극에 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간직된 꿈이자 모험일 것이다. 열차가 북극으로 향하든 다른 데로 향하든 중요한 것은 주인공 꼬마가 기차를 탔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북극으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탄다. 이 얼마나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가? 여정의 무수한 대자연과 세트, 그리고 카메라의 공간의 제약을 무시하는 카메라의 화려한 움직임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은 절로 입이 벌려지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에 매료되게 하는 사실은 현실의 진정성에 기반한 스펙터클이라는 점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제공했던 상상력의 극치와 진정성이 <폴라 익스프레스>에서도 보였다.
<센과 치히로>가 동양적 색깔을 드러냈다면 <폴라 익스프레스>는 기독교와 미국 대중문화의 취향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천국이라는 하늘의 세계에서 현세를 지켜보는 신의 존재를 믿듯,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난장이와 흡사한 산타요정들은 모니터로 전 세계의 아이들을 지켜본다. 이러한 설정은 감시의 <매트릭스>와 닮아 불편하다. 문득 종교라는 것이 세계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닐까 하는 부정적 생각이 든다. 어찌됐든 요정들은 고공낙하를 하는 특급스턴트맨에 구조대원이다. 한 요정은 <반지의 제왕>의 골룸의 명대사 ‘Trust Me!'를 외친다. 루돌프들은 서부영화의 야생마처럼 뒷발을 들어 날뛰고 요정들은 그 동물들을 끈으로 길들이기에 바쁘다. 특히 산타의 등장 때 울려 퍼지는 트럼팻 소리에 이은 재즈풍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과 요정들의 환호성은 미국식 파티와 스포츠경기의 함성을 연상케 한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산타클로스는 주인공의 가슴에 진짜 크리스마스를 심어주고 선물을 전하러 떠난다. 그리고 산타요정 밴드의 싱어는 미국의 락 싱어 ‘에로 스미스’를 닮았다. 미국의 대중문화가 여기저기 녹아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역사 짧은 나라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구하고 선 굵은 전통문화의 부재가 미국의 문화를 상업주의로 천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주는 여운이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받기 힘든 이유는 그 엄청난 대중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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