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게이브 네빈스)는 스케이트 보드를 잘 타는 것이 최고 목표인 미국의 평범한 고등학생. 토요일 밤 스케이트 보더들이 모이는 파라노이드 공원에 간 알렉스는 실수로 근처 사설 경비원을 죽이고 만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알렉스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지만, 이후 자신에게 닥칠 엄청난 댓가가 무섭다. 결국, 알렉스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거스 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는 <게리 Gerry> <엘리펀트 Elephant>에 이은 그의 이른바 "게리 3부작"의 완결편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게리> <엘리펀트> 그리고 더 나아가 거스 반 산트의 2006년작 <라스트 데이즈 Last Days>처럼 <파라노이드 파크>는 1950년대 중반 미국 할리우드에서 주로 이용되던 1.33: 1의 영화 화면 비율로 보여지며, 또한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겪은 외로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극 중 시간은 잘게 부서져 특별한 규칙 없이 재배열된다. 우연히 살인을 저지른 10대 청소년 알렉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파라노이드 파크>는 토요일 밤의 그 운명적인 사건의 전후를 오가며 알렉스의 내면 안으로 들어간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미국 포틀랜드에서 주로 활동하는 <라스트 데이즈>의 원작자 블레이크 넬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가 영상의 영화라면 <파라노이드 파크>는 소리의 영화다. 왕가위의 전문 촬영 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이 잡아낸 화면은 아름답다. 자연광과 그림자, 고저속 촬영 등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 워킹은 마치 한 편의 영상시를 보는 듯 매혹적이다. <파라노이드 파크>의 사운드는 크리스토퍼 도일의 이 화면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소음과 포크, 재즈, 펑크, 힙합, 베토벤의 고전 등 <파라노이드 파크>의 사운드는 적재적소에서 알렉스의 심리 상태와 행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85분 남짓한 영화의 러닝타임은 거스 반 산트의 다양한 영화적인 실험의 장이다.
극 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소년 배우들은 모두 연기 경험이 전무한 아마츄어 배우들. 알렉스 역의 게이브 네빈스, 제니퍼 역의 테일러 멈슨 등 주요 캐스트들은 미국의 미니홈피인 마이스페이스닷컴을 통해 캐스팅된 경우다. 거스 반 산트의 놀라운 배우 조련 실력 덕택에 이들은 스크린 안에서 펄펄 난다. 스타일도 없고, 한계도 없고, 시스템도 고려하지 않은 자유로운 연기. 다름 아닌 거스 반 산트가 추구하는 영화 색깔과도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