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신작들 중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다보면 주연 라인업이 100%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사람이 마음에 들면 한 사람은 별로고 뭐, 이런 식이었다.
우리동네,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라하는 필자는 장르에서 일단 만족했다.
그것도 살인마가 둘씩이나 나온다는 것에 아주 혹했었다.
주연 라인업은 커프의 훈남 이선균(필자는 태릉선수촌에서 꽂혔다)
뮤지컬계의 꽃미남에서 공중파로 진입한 요주의 배우 오만석(이름때문에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천하장사 마돈나 이후로 완전 지지하고 있는 류덕환
이 세사람의 캐스팅에 쾌재를 부르고 말았다. 그때가 아마 개봉 앞두고 석 달 전 쯤.
넌 기교만 있지, 순수함이 없어. 라는 카피의 포스터는 마치 두 명의 살인마가 대결인양 얘기하지만
실상 영화를 보고 있자면 [우리동네]는 범죄영화이기 이전에 그냥 드라마에 가까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살인자가 나오기 때문에 자주 보여지는 범행장면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는 과격하지는 않았다.
이런 영화는 스토리를 조금만 발설해도 네타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감상평을 쓰기가 난감하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류덕환의 연기다.
언제봐도 반듯한 아들역이 적격인 이 배우는 [우리동네]에서 선한 아이의 얼굴에 잔인한 살인욕구를 가진
연쇄살인마를 연기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봤을 때, 나는 류덕환에게서 [독]을 느꼈다.
연기는 아주 열심히 한다고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독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방면에서 류덕환은 독하게 노력형 배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배우로써 가장 큰 핸디캡은 작은 신장과 아기같은 동안 얼굴.
성인이 된 그가 성인 연기를 맡는다는 것이 참 어색한 상황이다.
이번 영화 [우리동네]에서의 연쇄살인마 조효이라는 캐릭터는 이러한 류덕환에게 전환점이 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역이다. 순수하고 마냥 어릴 것만 같은 얼굴의 평판 좋은 문방구 주인 조효이.
하지만 마음속에는 어린시절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늘 살인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살인에 있어서 누구보다 주도면밀하며 천재적이다.
그 뽀얗고 밤톨같은 얼굴이 일순간 살인마로 변하는 모습이라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감독이었더라도 효이역에는 이 배우를 선택했을 것만 같다는 느낌.
두번째로는 우리 동네, 즉 내가 줄곧 살아왔던 낯익은 장소들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것이다.
이 영화는 다른 범죄스릴러처럼 범인이 누구인지 뒤쫓거나 매순간의 복선을 계산할 필요가 없다.
시작부터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느낌과, 연쇄살인의 범인이 밝혀진다.
물론 포스터에서 풍기는 것처럼 두 살인마의 피비린내나는 대결 또한 아니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가 가지는 최대의 매력인 퍼즐식의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내가 줄곧 살아왔던 곳에서 일어났었고,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살인의 충동은 누구나가 느낀다. 그것은 아주 찰나의 분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일어났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이성을 찾는다. 하지만 때때로 아주 가끔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가족에 관련된 것, 사랑에 관련된 것, 우정에 관련된 것.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한 위해가 우리를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 동네]는 살인하고 싶다는 충동과 상상이 살인을 하는 것과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 경주(오만석 분)가 자신이 쓰던 소설처럼, 자신이 상상했던 찰나처럼
여주인을 살인하게 되버렸을 때 우리는 그 차이가 불과 종이 한 장 정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인 자체를 즐기는 살인이 있는가하면 대부분의 살인에는 원인이 있다.
치정, 채무 관계 등등. [우리 동네]에서의 모든 살인의 근원에는 슬픔이 있다.
언제였던가 자신이 겪었던 아픈 기억이 그 충동을 부추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살인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면이 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일수록 살인 수법은 더욱 대담해진다고 말이다.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박진감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며 어딘가 모르게 측은함을 느끼게 되었다.
솔직히 끝내주게 잘만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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