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시기가 지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가 된다. 자신과 닮은 새 생명이 뛰어다니고 웃고 자신의 품에 안길 때 부모들은 자신이 누구누구 엄마, 아빠.... 하는 제 2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여기 아버지의 이름을 갖았기에 행복하고 자녀를 위해서는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부모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한 아버지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빈곤했지만 화목했던 가정. 건강하다고 믿었던 아들의 심장은 이제 나약해 질대로 나약해 졌고, 엄청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한 아버지의 고군분투는 시작된다. <트레이닝 데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덴젤 워싱턴"이 아버지인 "존 큐"를 맡았다.
우린 여러 영화를 통해 자녀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아왔다.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자녀를 향한 무조건적 사랑에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동조한다. 영화 <존 큐>에서도 심부전증에 걸린 아들의 수술을 위해 병원을 상대로 한 "존 큐"의 인질극을 그린 영화로 자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부성애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부모이기에 그럴 수 있다." 라는 명분만을 내세운 체 감정에 호소만 할뿐 영화의 한 축인 종합병원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는 "존 큐"의 모습에서 아무런 극적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다. 인질인 응급실의 환자들도 별다른 이유 없이 그에게 쉽게 동조하였고 종합병원의 경비 상태도 너무나 허술해 보였다. 인간적인 "존 큐"의 모습만을 너무나 강하게 부각시키기엔 나머지의 설정들이 잘 받쳐 주지 못했다. 기존의 "덴젤 워싱턴"의 선해 보이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영화를 시작하였 다해도 "덴젤 워싱턴" 한 명만으로 영화를 지탱하기엔 상당히 버거워 보인다.
또한 관객의 눈물을 원한 영화라고 보기에도 미약함이 보인다. 처음부터 보이는 "Happy end", 그리고 "아버지는 위대했다."~~~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상당수의 관객이 부모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공감대 형성은 어려워 보일 듯 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흑인 가정... 그리고 병든 아들. 수술비가 없기에 퇴원을 강요하는 병원. 어쩌면 감독은 백인 우월주의의 미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임시직의 일자리에게 힘겹게 부은 보험마저도 쓸모 없이 되어버린 상황... 가난한 흑인이기 에 당하는 고통까지... 막다른 길목에서의 마지막 하나의 선택...
미국영화는 주연 배우의 피부색에 따라 의미해석에 차이가 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만약 "존 큐"가 흑인이 아닌 백인이었다면 "자식을 향한 한 아버지의 사랑"만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존 큐"는 흑인이다. 병원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는 아버지...그리고 미국 사회를 상대로 테러를 벌이는 흑인... 아들에게 새 생명을 준 아버지... 그리고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찾고 승리한 흑인... 마지막으로 "존 큐"의 제 2의 이름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존 큐"의 피부색은 검은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