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으로 점철된 묘한 블록버스터
처음 <캐리비안의 해적>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때, 아마도 이 시리즈의 성공을 점쳤던 사람들은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이미 한물간 해적영화에 비주류 감성으로 충만한 조니 뎁의 조화, 그런데 이 묘한 시리즈물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3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왜 묘한 블록버스터일까? 이 해적 영화의 성공은 한마디로 기존 해적 이미지를 전복한 데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 기존의 해적 이미지란 무엇일까? 그건 악당 해적이건 영웅 해적이건 해적 두목은 일단 대단히 마초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조니 뎁은 이 모든 이미지를 뒤집어 버렸다. 한시도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항상 건들건들거린다.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여차하면 내뺄 궁리에 동료들에 대한 배신도 식은 죽 먹듯 한다. 거기에 분명 게이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뽐낸다.
2편에서 잭(조니 뎁)을 바다괴물 크라켄에게 죽도록 만든 스완(키라 나이틀리)은 윌 터너(올랜도 볼룸), 바르보사 선장 등과 함께 싱가포르의 해적 사오펭(주윤발)을 찾아가 잭을 다시 살릴 수 있는 해도를 요청한다. 당시 상황은 동인도 회사의 베켓 경이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 호와 선장 데비 존스를 수하에 거느리며 바다를 장악하고, 대대적인 살육을 행하고 있다. 동인도 회사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해적 연맹의 아홉 영주가 모여 예전에 자신들이 인간의 몸에 가두어 버린 바다의 여신 칼립소를 풀어줘야 하며, 잭을 살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해적 연맹에 잭도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등장하는 주요 배역들이 하나같이 제대로 된 인간들이 없다는 점이다.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영웅적 캐릭터도 없고, 꼭 죽어야 할 악당 캐릭터도 희미하다. 모두들 선과 악이 뒤섞여 있으며, 밥먹듯 배신을 때린다. 그러다보니 잭, 스완, 윌, 바르보사 선장 등은 서로를 믿지 못해 잭 선장을 살려내자 마자 배 위에서 양 손에 총을 든채 누구를 죽여야 자신에게 유리한지를 계산한다. 잭은 자신을 살린 이들을 보며 "3명은 나를 죽이려고 했고, 한 명은 정말 나를 죽인 사람이다"며 히죽거린다.
한편, 영화에서 그리는 동인도 회사와 해적 연맹의 대결 구도는 정치적으로 그럴듯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영화에 나오는 여러 대사를 보면, 해적들이 누비고 다니는 바다는 여전히 권력이 미치지 않는 일종의 '해방구'를 연상시킨다. 즉, 해적들은 해방구를 전전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이고, 동인도 회사는 자본의 인격체로서 권력에 순화되지 않은 이들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려고 한다. 동인도 회사를 현재 세계 일극체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으로 치환시켜도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가끔은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너무 과도한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해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기묘하면서도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과 이야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시리즈의 3편은 마치 2편은 숨고르기였다는 듯 2편의 재미를 훌쩍 뛰어 넘으며 대단원의 막을 무난히 마무리하고 있다. 물론, 특히 동양인이라면 우리의 주윤발 형님이 별 위엄도 없는 역할에 빨리 사라져 버린 건 너무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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