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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코미디 영화? 또는 웃기는 호러영화? 세브란스
ldk209 2007-11-13 오후 3:01:13 2412   [12]

※ 스포일러 있음.

 

무서운 코미디 영화? 또는 웃기는 호러영화?

 

언제부터인가 호러영화는 고문영화가 되어 버렸다. 독특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목불인견적 잔인함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는 쏘우 시리즈, 한니발 시리즈,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등등. 그러다보니 호러영화는 극소수 마니아들만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되어버렸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를 이상한 정신세계에 기반한 것으로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즐기는 영화가 아닌 참고 견뎌야 하는 영화라니. 미국산 호러영화들이 점점 잔인해지고 있는 한편에 세계 공포 영화계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왔던 이탈리아나 일본의 공포영화는 최근 몇 년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가깝게는 <디센트>나 <크립>, 멀게는 <28일후..>부터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영국산 호러영화들이 떠나버린 호러영화팬들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세브란스>라는 제목을 보고 대부분 먼저 병원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혹시 이 영화가 <기담>같은 병원과 관련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Severance는 절단, 끊음, 단절을 의미하는 단어로 호러영화 제목으로는 아주 그럴싸하다. 그래서 제목과 목이 잘려져 있는 포스터만 보고는 <쏘우>의 잔인함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염려마시라. 물론 다리가 잘리고, 목이 잘리고, 가슴에 총을 맞고, 불에 타고, 거꾸로 매달려 칼을 맞는 등 잔인한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그다지 잔인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나도 모르게 낄낄 웃음이 터지는 코믹함이라든가 정치적 공정함이 영화의 잔인함을 감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크립>의 크리스토퍼 스미스 감독은 당초 증권브로커들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호러영화 시나리오를 제안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스미스 감독은 <크립>으로 국제적인 영화제를 순회하다가 관객들이 장난기가 섞인 호러 장면에 더 열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시나리오를 코믹 잔혹물로 전면 개작했고, <세브란스>가 선을 보이게 됐다.

 

다국적 무기회사 '팔리세이드'의 영국 판매부서 직원들이 헝가리로 워크숍을 떠난다. 그들의 계획은 사장이 구입한 호화산장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며 단합을 꾀하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꼬이기 시작한다. 도로 한 가운데에 나무가 쓰러져 있고,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헝가리 버스 운전사(그런데 운전석이 영국처럼 우측이다. 우리와 같은 좌측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영국 출신 감독의 착각인 듯)는 다른 길로 돌아가자는 팀장의 제안에 화를 내며 이들을 내려놓고 그냥 돌아가 버린다. 리더십 대신 고집만 가득한 팀장은 팀원들을 이끌고 걸어서 낡은 산장에 도착한다. 팀장의 고집에 이끌려 온 팀원들-상사에 무조건 아부만 하는 고든, 엘리트 직원으로 보이는 해리스, 정치적 공정함에 사로잡혀 있는 질, 조용하고 차분한 빌리, 마약쟁이 난봉꾼 스티브, 당찬 미국 여자 매기-은 산장에 짐을 푼다. 하지만 돌아갔던 버스 운전사가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고든의 다리가 곰덫에 잘려 나가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살인마에게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잔인함과 코믹함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고든이 곰덫에 걸려 다리가 잘리는 장면을 보면, 두 명이 덫을 벌리는 사이 고든이 다리를 빼지 못하고, 덫을 잡고 있던 이들은 덫을 놓치면서 몇 차례 덫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깨끗이 절단된다. 게다가 그 다리를 냉장 보관한다며 냉장고에 집어넣는데, 잘 안 들어가자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쑤셔 넣는다. 해리스는 길로틴이 오히려 인도적이라는 질에게 길로틴으로 머리가 잘려도 그 머리는 몇 분간 살아 있다는 주장을 한다. 결국 해리스는 살인마에 의해 머리가 잘려 죽는데, 잘려진 해리스의 머리는 자신의 몸을 보며 마치 '봐, 내 말이 맞잖아'라는 듯한 웃음을 흘린다.

 

처음 이들이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갈 때의 상황을 보자. 왠 짐승소리가 들리자 팀원들이 곰이 아니냐며 두려워하자, 팀장은 '헝가리에는 곰이 없다. 만약 우리가 국경선을 넘어 루마니아까지 갔다면 곰이 있겠지만...'이라며 곰이 아니라고 말하자 해리스는 '곰이 국경선을 넘기 위해 여권이 필요하냐'며 반박한다. 이렇듯 말도 안 되는 걸로 옥신각신하며 걷는 이들 뒤로 곰 한마리가 이들을 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글로 써 놓으니깐 별로 웃기지 않은데, 정말 웃기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살인마에 당하는 회사직원들을 다국적 무기 회사로 설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정치적 풍자에 있다. 팔리세이드 직원들은 버스를 이용, 산장으로 이동하면서 회사에서 제작한 홍보 영상을 보고 있다. 세계 곳곳에 무기를 팔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영상은 테러 방지에 팔리세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내세운다. 만약 당신이 팔리세이드 회사의 로고를 본다면 바로 당신이 안전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들이 팔리세이드 직원이기 때문에 살인마로부터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팔리세이드 로고는 안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살인마들은 팔리세이드 무기를 가진 정부군으로부터 공격을 당했고, 이에 보복을 하는 중이다. 물론 살인마들이 공격을 위해 사용하는 무기도 아마 팔리세이드 무기일 것이다. 세계적인 무기회사들은 전쟁을 벌이는 양 당사자 모두에게 무기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

 

그 홍보 영상을 보던 질은 불만을 터뜨린다. 어째서 저 영상에 나오는 여인들은 모두 금발의 백인 미녀들이란 말인가. 팀장은 우연일 뿐이라고 강변하다가 흑인이 나오는 걸 보고, '저 봐 흑인도 나오잖아'라고 말하는데, 그 흑인은 바로 테러리스트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끔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라고 일컬어지는 지뢰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결국 팀장은 자신들이 제조한 지뢰를 밟아 약 2명의 살인마와 함께 장렬하게 최후를 장식한다. 팀장이 거의 유일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또 이런 장면도 있다. 살인마에 쫓기던 매기와 스티브는 원래 계획했던 별장을 발견한다. 그곳엔 사장이 직원들을 기다리며 창녀 2명과 음란한 놀음 중이다. 매기와 스티브의 호소에 사장은 '안 그래도 실험해 봐야 한다'며 보무도 당당히(이 때 음악이 죽여준다) 바주카포처럼 생긴 신무기를 가지고 밖으로 나온다. 살인마를 향해 발사된 무기는 살인마 대신에 하늘로 솟구쳐 지나가던 민간 비행기를 격추시킨다. 지금 이 순간에도 테러를 방지한다거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벌어진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영화는 호러영화나 공포영화들의 관습(클리쎄)을 의도적으로 비껴가며 히죽거린다. 예를 들면, 매기는 살인마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무거운 돌을 든다. 아니 들려고 시도하지만 낑낑대다가 실패하고 옆에 있던 작은 돌을 들어 내리친다. 이러니 돌로 내리치는 장면이 잔인하게 다가올 리가 없다. 그리고 사장과 함께 있던 두 명의 창녀들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영어도 못하는 창녀가 호러영화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도 바로 관습을 비켜간 것인데, 이들은 심지어 매기를 죽이려는 살인마를 향해 기관총을 발사해 매기를 구하기도 한다. 버스 속에서 포르노 사이트나 접속하고, 환각을 일으키는 버섯을 씹어대며, 어처구니없는 성적 상상을 태연하게 팀원들에게 발설하는 스티브는 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다. 칼에 가슴을 찔리는 등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동료인 매기와 헝가리 창녀 두 명과 함께 살아남아 배로 탈출하는 스티브는 그 상황에서 한다는 말이 "넷이서 할까?"(foursome)다. 정말 마지막까지 골때리는 영화다.

 


(총 0명 참여)
thesmall
글쿤요   
2010-03-14 21:41
jhee65
너무 재밌고 무섭기도 하고   
2009-06-24 14:48
ldk209
????   
2007-12-1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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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2006, Sev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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