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있어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후각 이외의 감각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단지 여타 감각뿐만 아니라 그의 판단기준까지도 흐리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단지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일념하에 벌어지는 여러 살인행각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손톱만큼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분명 최고의 향수를 향한 어느 천재의 장인정신은 인정할만 하지만 그 과정만큼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살인행각도 엄밀히 말해서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향기를 채집하기 위한 필연의 과정으로 묘사가 됩니다. 잔혹한 살인마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일에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장인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마지막에 왜 살인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저 필요해서 그랬다는 그의 대답처럼, 적어도 그의 정신세계를 통해서 본 그의 모든 행각은 살인이 아닌, 정말 그가 사랑했고, 그리워했던 냄새를 모아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온갖 악취에도 무덤덤하게 사는 사람들, 자신의 악취를 감추기 위해서 향기롭게 포장된 거짓 냄새로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을 경악속으로 몰아넣을 최고의 향기가 결국 인간의 체취라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악취와 거짓된 냄새에 익숙해져 버려서 어느새 인간 본연의 체취는 느끼지 못하는 세상. 하지만, 그루누이는 모두가 이제는 잊어버린 그 냄새를 통해서 세계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문제의 마지막 군중씬. 죽음을 눈 앞에 둔 그루누이는 자신의 필생의 역작을 몸에 뿌립니다. 악취와 거짓된 냄새가 정신없이 섞여있는 성난 군중들 앞에 선 그루누이는 그가 만든 향수를 통해서 그들을 경악시킵니다. 물론 꽤나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왜 그들은 그루누이가 전하는 냄새에 그렇게 몰아의 지경이 되어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찢어죽여도 마땅치 않은 놈이라고 광분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왜 그를 천사로까지 칭하며 열렬히 환호하는 것일까. 그들이 그루누이에게서 맡은 냄새는 무엇일까. 분명 이 장면은 악취와 거짓 냄새만큼이나 위선과 거짓이 가득한 현실의 세계를 날카롭게 풍자한 대목입니다. 기억속에서나 가물가물한, 언젠가 맡아 본 적이 있는 듯한 인간 본연의 냄새. 아니, 태초의 냄새라고 할 수 있는 그 냄새에 그들은 가장 순수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들은 그루누이가 전하는 냄새에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냄새가 사라진 순간, 그들은 다시 현실로 되돌아 옵니다. 악취와 거짓냄새에 익숙해져버린 현실로 말입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러하겠지만, 서두에도 말했듯이 인간의 후각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우유부단하며, 간사한 면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느꼈던 황홀함에 빠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 익숙했던 냄새에 다시 적응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에 그루누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집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꽤나 인상적입니다. 평생을 냄새에 집착하며,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살아온 그루누이지만 정작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도 인간들의 마음은 절대 만족하지 않습니다. 향수가 퍼져있는 순간만큼은 그 냄새에 감동하며, 열광하지만 그 냄새라는 것은 어찌보면 영원할 수 없습니다. 변덕이 심한 후각만큼이나 인간들의 마음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루누이는 더 이상 냄새에 대한 집착을 갖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대신 그가 선택한 방법은 영원히 그들의 가슴 속에 간직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는 한정성이 있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간직되는 냄새는 언제까지고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소위 미치게 만드는 최고의 향수를 만든 순간, 어찌보면 그루누이는 더 이상 그의 삶을 연장할 그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비록 그가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벌였던 과정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지만 절대향기를 위한 거의 처절하면서도 광기어린 노력은 섬뜻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조연으로 나왔던 명배우 더스틴 호프먼이나 스네이프 교수로 유명한 알란 릭맨, 그리고 [피터팬]으로 많이 알려져 어느새 성숙한 아가씨로 변모한 로라역의 레이첼 허드 우드 등의 연기는 분명 그 분량면에선 많이 아쉽지만 나름대로 인상적이며, 무엇보다도 주인공 그루누이역을 맡은 벤 위쇼는 고통과 절망, 광기와 암울함 등 주인공의 어두웠던 인생을 제법 괜찮게 연기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냄새를 맡으며 살아갑니다. 별로 맡고 싶지 않은 냄새, 골이 아플 정도로 진하게 다가오는 향수냄새, 무슨 냄새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그저 밋밋한 냄새들. 그 냄새들 속에서 우리의 후각은 자신이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냄새에 반응을 보이며 우리를 그 냄새에 익숙하도록 만들어갑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떤 냄새에 익숙한 채 살아가고 계십니까. 맡기 좋은 냄새에 익숙해져서, 여러분들의 생각까지도 편한 쪽으로 익숙해져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비록 스릴러의 형태를 띄고는 있지만 이 영화 [향수]는 엄밀히 따져보면 마치 병 통째로 몸에 뿌려놓은 독한 향수처럼 은근히 중독성 강한 드라마입니다. 잃어버린 냄새를 찾아서 광기어린 모험을 펼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이는 것은 비단 저 뿐일까요. 수많은 가공된 거짓냄새들에 익숙해진 현실이지만 결국 가장 아름다운 냄새는 인간 본연의 냄새라는 이 영화의 주제는 단순히 냄새의 차원을 넘어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단순히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냄새를 찾아서. [향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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