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비디오를 빌리러 갈 때 두 가지를 생각하고 간다.
하나는 꼭 보고 싶은 영화. (1순위)
다른 하나는 1순위 영화가 없었을 때 빌리고 싶은 영화. (2순위)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가 비디오로 막 나왔을 무렵의 이야기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비디오로 나온 이후 늘 1순위였지만 갈 때마다 대여 중이었기 때문에 2순위를 빌려보곤 했었다.
그날은 ‘첨밀밀’을 2순위로 해서 비디오 가게에 향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1순위 ‘인생은 아름다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망설임 없이 영화를 빌려 나오는데 비가 내리더군.
젠장~
반바지에 나시, 샌들 신고 난 비에 젖지 않으려고 졸나게 뛰었다.
그래도 그렇게 몇 날을 기다리고,
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열심히 뛴 보람이 이 영화에는 분명 있었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탔든 안탔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뭐 그 덕분에 언론이 떠들썩했고 내 귀에도 "이 영화가 이런 영화다"라고 들려 왔으니까... 또 외국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잖은가... 작품상도 갔어야 했는데...)
그 시상식에서 정작 내게 중요했던 것은 로베르토 베니니의 수상보다 수상 발표 당시의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이었던 로베르토 베니니의 모습 자체였다. 의자 위로 번쩍 올라가 손을 크게 흔들며 너무나 좋아하던 그의 모습이 왜 그리도 순수하고 맑아 보였던지 영화를 아직 보지도 않은 내가 다 축하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그의 모습과, 매스컴을 통해 알게 된 스토리가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꼭 보고 싶게 만들었다.
1938년 파시즘과 극우 민족주의가 팽배했던 이탈리아.
시골 청년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친구와 함께 도시로 상경한다. 그러는 도중 우연히 만난 "도라"라는 여인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신분을 뛰어넘는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하게 된다. 아들 "죠슈아"를 낳고 책방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2차 대전 막바지의 어느 날, 유대인인 귀도는 아들 죠슈아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어린 조슈아가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귀도는 수용소 생활이 하나의 게임이며,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은 탱크를 선물로 받게 된다는 거짓말을 한다. 시간이 흘러 독일군은 연합군에 밀리게 되자 수용소 존재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수용소 내의 유태인들을 죽이려 한다.
그러는 혼란 속에서 귀도는 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 시키고 아내 역시 구하려 하지만 독일군에게 들켜 목숨을 잃는다. 독일군이 수용소에서 물러가고 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조슈아는 연합군의 탱크를 보고 아버지가 말한 1000점의 선물로 생각하고 기뻐한다.
연합군 탱크를 타고 가던 조슈아가 수용소에서 나와 터벅터벅 걷는 어머니를 발견, 모자 상봉이 이뤄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무리 봐도 주인공 귀도에게 있어 ‘인생은 아름답’지 못했던 것 같은데 영화 제목은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영화 속에서 귀도는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절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으며 행동한다. 아마도 그런 의미의 제목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가 암살되기 직전에 남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라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슬픔"
2차 대전 독일군의 유태인 학살을 소재로 삼았지만 결코 애잔한 음악을 흘린다든지 울고 짜고 하는 식의 분위기를 자아내진 않는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시리며 슬프다.
그건 아마 극과 극은 통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늘 우리를 즐겁게 하던 어느 코미디언의 삶을 다큐형식으로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묘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늘 웃기는 사람이기에 실제 생활에서도 웃음이 넘치고 행복할 것만 같은데 그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라도 나올라 치면 여느 슬픈 영화를 보는 것 보다 더한 슬픔이 밀려온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주인공 귀도는 자주 웃는다. 기뻐서 웃고 안좋은 일이 생겨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웃음으로 흘려버리곤 하는 그의 웃음은 마치 위에서 말한 코미디언의 눈물처럼 극과 극의 슬픔으로 인도한다. 수용소 안에서 아들에게 밝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쓰는 부성애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것은 코믹연기다.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재치를 요구한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영화 속엔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한 비판과 조롱을 재치 있게 코미디로 변화시켰고 그 외 코믹한 장면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 듯한 흔적을 볼 수 있어 정말 성의 있게 영화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소재가 인종 학살이기에 그걸 코믹화 시키면 자칫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자연스럽게 주제를 해치지 않게 소화시켜 코믹은 코믹으로 살리면서 그것을 주제에까지 연결시켜 극과극의 슬픔으로 극대화 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문득 우리나라 코미디언이 우리나라는 어떤 주제(6.25, 5.18등등)를 코미디로 해보려하면 관계자들이 그런 주제를 코믹화 시키면 저질화 된다고 못하게 한다며 불편해 하는 걸 본적이 있는데 처음엔 그 코미디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가끔 TV에 나오는 그런 블랙코미디를 보면 주제를 살리기 보단 웃음 그 자체에 의미를 두다 주제까지 망치면서 스스로 저질로 빠져 드는걸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 것 없겠지만 웃음에도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와 노력이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차베스의 권투 시합에서 차베스에게 5천원 걸었다가 돈을 날리고 씁쓸했었는데 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보여준 긍정적 삶의 방식이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 그래도 아까운 내 돈 5천원...흑흑 ㅜㅜ )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수상 발표 후, 의자 위로 올라가 두 손을 열심히 흔들던 "로베르토 베니니"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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