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사과할 줄 아는 첩보 액션 영웅의 귀환....
1편 <본 아이덴티티>에선 기억을 잃고 도망자가 되고, 2편 <본 슈프리머시>에선 살해된 연인의 복수를 한 제이슨 본이 이번엔 모든 기억과 진실을 되찾기 위해 돌아왔다. 사실 2002년에 처음 맷 데이먼이 주연인 액션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맷 데이먼이 액션 영웅이 된다고? 기존의 헐리우드 첩보 액션 영웅을 연상해보면 도저히 맷 데이먼이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모든 부정적인 예측을 뒤로 하고 이제는 오히려 가장 첩보원 다운 영웅으로 대접 받기에 이르렀다.
정말 있을 것 같은 첩보원이란 이미지야말로 <본> 시리즈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이 비슷한 제임스 본드가 현실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온갖 첨단 장비의 도움을 받아, 유유자적 일을 처리하는 반면(대게 헐리웃 첩보 액션 영웅들이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제이슨 본은 일단 패션과 거리가 멀며,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장비를 획득, 주위 여건과 상황에 맞춰 사용한다. 그의 장비는 신문, 하드커버 정장 책, 벽에 붙은 지도 등이며, 그나마 첨단 장비라고 하면 성능 좋은 망원경이 유일할 듯 싶다. 그가 펼치는 액션도 다른 헐리웃 영웅과는 달리 크고 화려하지 않고, 짧고 간결하며 직선적이다.
영화는 정확히 겹치는 건 아니지만 2편의 마지막이었던 러시아에서 시작한다. 처음부터 쫓기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제이슨 본은 사고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밀 조직인 블랙 브라이어의 존재를 알게 된다. 치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조직은 제이슨 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제거하려 하지만, 제이슨 본은 CIA 내부의 파멜라(조안 앨런)와 니키(줄리아 스타일스)의 도움을 받아 점차 치부의 핵심에 접근해간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두드러진 장면은 몇 번에 걸친 추적신이다. 하루에 40만 명의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런던 워털루 역, 모로코의 탕헤르, 그리고 뉴욕으로 이동하며 펼쳐지는 추적 장면은 나도 모르게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고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장면 하나하나가 음악을 보는(!) 듯한 감흥을 자아내는 추적 장면들은 이 영화를 첩보 액션 영화의 걸작으로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게 한다.
2편인 <본 슈프리머시>에서 베를린에서의 추적 장면을 멋드러지게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3편에서도 그 실력을 여지 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일반인과 엑스트라들이 뒤섞여 정말 현실감있는 추적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세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끔 카메라를 힐끗 쳐다보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다. 특히 모로코 탕헤르에서의 추적 장면은 니키, 킬러, 그리고 제이슨 본의 눈에서 보는 장면이 서로 겹치며 마치 카메라를 달고 뛰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연출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뛰어나다. 거기에 좁은 공간에서의 액션 장면까지.
물론 무엇보다 이 영화를 값지게 하는 건 가장 뛰어난 CIA 암살요원이었던 제이슨 본이 살상을 거부하며 과거를 사과할 줄 아는 존재라는 점이다. 2편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죽인 러시아 정치인의 딸을 찾아가 사과를 한 제이슨 본은 3편에선 죽은 연인의 오빠를 찾아가 자신의 죄과를 고백한다. 그리고 충분히 죽일 수도 있는 암살 요원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다. 나중에 그 요원이 왜 자기를 죽이지 않았느냐고 묻자 제이슨 본은 간단히 말한다. "너는 나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아니? 저들이 만든 우리의 모습을 봐" 이러한 제이슨 본의 모습은 미국이 과거에 저지른 많은 악행들(CIA가 개입한 제3세계의 쿠데타, 암살, 정치공작, 그리고 전쟁 등)을 반성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물론 현실에서야 일어나기 힘든 일이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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