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영화평 쓰면 되는 건가요? 이 곳에 영화평을 쓰는 건 처음이네요..^^; 암튼.. 미천한 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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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남자는 한기라는 사창가 포주와 선화라는 미대생의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한기는 길거리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여대생 선화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자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무릎엔 서양미술사라는 두꺼운 책을 들고, 청순해보이는 정장 차림에, 힐을 신은 발엔.. 그런 신이 넘 버거울 정도로 청순하다는 듯 대일밴드를 붙이고 있는.. 그런 청순하고 예쁜 대학생 선화에게서 한기는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선화는 그의 눈빛을 감지하고는, 그 단정치 못한 외양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자리를 피합니다.
남자친구가 등장하고, 둘이 반가워하고 있을 때.. 한기는 선화의 입에 강제로 키스를 합니다.
지나가던 군인들에 의해 붙들린 한기에게.. 선화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그 때부터 한기는 애증의 소용돌이로 빠지게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랑에는, 애증이 혼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을 향한 욕망과 삶을 향한 욕망은 어쩌면 동일한 것이라는, 프로이드의 말도 안 되는 듯한 가설은,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정말 예쁜 상대를 만나면 깨물고 싶다는 욕망이 드는 것도,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 아닐까요? 깨문다는 건 죽임을 상징하는 행위일 테니까요.
어쨌든 한기는 선화를 향한 이중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사랑과 증오.. 보호와 유기(遺棄)..
그래서 한기는 선화를 사창가에 집어넣고, 그곳에서 망가져가는 선화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기의 마음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기가 처음 좋아하게 된 선화는.. 한기의 바운더리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경계밖 존재였기 때문이지요.
그 둘의 경계.. 즉,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 혹은,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 혹은, 빛의 세계(영화에선 흰색으로 표현)와 어둠의 세계(검은색과 붉은색).. 그 둘의 경계를 나타내주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거울입니다. 한기와 선화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거울 너머에 있는 선화를 한기는 이쪽 편에서 지켜봅니다. 그 둘 사이에는 거울만큼의 단절과, 거울 두께만큼의 가까움이 혼재합니다.
한기는 그 경계 너머의 존재인 선화를 넘보며 자신의 경계 안으로 집어넣으려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계를 먼저 부수는 것은 선화입니다. 선화가 거울을 깨고 그 너머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던 한기를 맞이하지요.
선화가 거울을 깨고 한기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은, 어쩌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화는 본질상, 한기의 영역과 같은 곳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선화는 강박적으로 흰 색을 좋아합니다. 사창가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여자 포주가 빨간색 내의를 골라줄 때도, 흰 내의를 고를 정도로 말이지요. 강박적으로 깨끗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내면의 더러움과 추악함을 감추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결벽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선화는 온갖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늘 백화점에서 약속을 하고, 악세사리를 좋아하고, 남의 이목을 끌기위해 있어보이는 두꺼운 책을 보란듯이 들고 다니기도 하는.. 누군가 놓고간 지갑에서 큰 돈을 훔치기도 하고, Egon Schiele를 좋아하여 서점에서 그의 화집에 있는 그림을 몰래 훔치기도 하지요.
(에곤 실레는..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장치입니다. 에곤 실레는 표현주의 화가로서, 인간의 에로티시즘을 향한 열망과 그 뒤틀림을 표현한 문제작가로 유명하지요. 특히 재미있는 건, 에곤 실레가 17살의 여자 아이를 누드화를 그리기 위해 자기 작업실로 유괴했다는 누명을 쓰고, 그와 관련하여 옥살이까지 경험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에곤 실레라는 표현주의 화가는 아마도 한기의 대리인이겠지요. 한기에게 빠지게 될 것이라는 복선이기도 하구요.)
선화는 욕망이 가득한 여자임에도 그 욕망을 의식의 기저에 감추고, 착하고 순수한 존재를 표방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었지요.
한기는 선화의 이런 모습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씁쓸해지기 시작합니다. 선화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지갑을 흘려놓게 하고, 그 지갑을 훔치는 선화의 모습에 절망적인 얼굴을 합니다. 또, 사창가에서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선화의 모습을 지켜보다, 처음과는 달리 선화가 그 관계에서 욕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대목에서 또 한 번 절망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한기는 선화를 보내줍니다. 원래 선화가 살던 세계.. 즉, 의식이 지배하는 세계로요.. 선화를 처음 만났던 백화점 정문 앞 벤치에서 그들은 헤어집니다. 선화는 색색옷을 벗어던지고, 다시 흰 옷을 입고 예전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대편 세계를 경험한 창녀를 받아줄리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바로 사창가를 존재케하는 사람들임에도 말이지요.
두 세계의 경계에서 갈곳을 잃은 선화는, 길거리에서 만난 트럭 운전수에게 다시 몸을 팔게 됩니다.
한기는 선화를 떠나보내고, "깡패가 무슨 사랑이야!!"라는 외마디 대사를 외치고, 선화를 순수하게 사랑하던 또 다른 자아(alter ego)인 명수의 칼에 목숨을 잃습니다.
어쩌면 그 죽음은 한기가 원한 죽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죄의식에 대한 자기 단죄의 의미이겠지요.
이 영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선화가 새장여인숙 앞에서 주운 사진을 다시 맞추는 씬에서 기인하는 듯 합니다.
제가 보기엔, 선화와 한기는 다시 만난 것이 아닙니다. 선화가 집어든 사진은 선화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사진인 것입니다. 물속에 빠져든 여인도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선화의 자기환상이지요. 즉, 순수한 존재라는 인식의 대상이며 주체로서의 자신을 죽인 것이지요.
선화는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고, 그 욕망을 따르는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트럭운전사를 따라간 것이지요. 선화에게 있어서 그 트럭 운전사는 한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사진도 뒷 부분의 트럭 매춘 장면도, 모두 선화의 환타지가 반영된 것이겠지요. 물론 트럭 장면은 한기의 얼굴만 환영일 뿐, 모두 실제 이야기일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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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선화가 경계 이쪽 세계에서 경계 저쪽 세계로 넘어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한기의 책임이었을까요?
아니..... 그 보다.. 원래 선화가 살아가던 세계는 경계 이쪽 세계였을까요, 저쪽 세계였을까요?
원래의 선화라는 존재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도 김기덕 감독이 나쁜남자를 통해 이야기하려던 것은, 이것 아니었을까요?
나쁜남자를 보고 나쁜새끼!!!!!라고 욕하는, 경계 내부의 의식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즉, 선화'들'에게.. 경계 내부와 외부를 구획짓는 거울을 깨뜨려 버리라는.. 그런 메시지는 아니었을까요?
욕망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가던 흰 옷 입은 선화도, 욕망을 숨길 수 없는 철저히 까발려진 삶의 환경에 내어 맡겨진 붉은 옷의선화도,, 모두 다 저의 모습이기에.. 한쪽 경계의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 할 수가 없더군요.
또한, 저는 한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이를, 나의 삶의 영역과 방식 속으로 편입하려,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기에..
한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댈 수도 없더군요.
여러분은 나쁜 남자를 어떻게 보셨나요................
p.s.
넘 길고 산만한 글이 되어버렸네요..^^; 다음 번엔 좀 더 체계적인 평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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